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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휴먼들의 도쿄패럴림픽 '입덕' 준비되셨나요[패럴림픽 개막]

[도쿄=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도쿄올림픽이 끝난 바로 그 자리, 도쿄패럴림픽 성화가 다시 불타오른다. 24일 오후 8시 일본 도쿄 신주쿠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있다(We have wings)'는 테마로 개회식이 열린다. 내달 5일까지 13일의 열전이 이어진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사랑에 빠져드는 마법의 순간이 있다. 귓가에 종소리가 댕그랑댕그랑 울리는 기적의 순간이 있다. 요즘 말론 흔히 '입덕(입문+덕후, 어떤 분야, 사람을 열성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함)'이라고 한다. 어느새 핑크빛으로 물들어버린 '패럴림픽 입덕기'를 공유한다. '패럴림픽이 뭐기에' 하는 당신에겐 뜻밖에 패스트트랙이 될 수도 있겠다.

▶호킹 박사 "고개 들어 별들을 바라보라!"

'패럴림픽 입덕기'에 세계적 이론물리학자 고 스티븐 호킹 박사 스토리가 빠질 수 없다. 패럴림픽 팬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2012년 런던 대회 개막식 얘기다. 단언컨대 9년 전 그날 호킹 박사의 위대한 '명강의'로 지구촌 수많은 이들이 패럴림픽에 '입덕'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장애인' 호킹 박사는 드넓고 캄캄한 우주를 밝히는 별빛 아래 휠체어에 몸올 싣고 전자음 합성 목소리를 통해 "당신 발 아래를 내려다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별들을 바라보세요. 무엇이 우주를 존재케 하는지 궁금해 하세요. 호기심을 가지세요"라는 신비로운 메시지를 전했다.

"패럴림픽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것(The Paralympic Games is about transforming our perception of the world)"이라는 천재 과학자의 정의는 진리다. 비장애인 선수들의 몸은 비슷비슷하지만 장애인 선수들의 몸은 단 한 명도 같거나 비슷하지 않다. 패럴림픽을 알기 전과 후의 세상은 다르다. 평등, 다양성, 인간, 인생에 대한 우주관, 세계관이 바뀌는 짜릿한 경험이다. 이제 별이 된 노과학자의 진솔한 응원은 살아갈 힘이다.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세상에 표준적인 인간이나 평범한 인간은 없습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당신이 성공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행운을 빕니다."

▶불사조, 비상하다

"'어벤져스' 시리즈를 보면 슈퍼히어로들이 세상을 구하죠.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우리는 다 슈퍼히어로예요. 모두 처참한 일을 겪었거든요. 우린 우리의 성공을 가로막은 역경과 싸워 살아남았어요. 그리고 강해졌죠. 인생은 투쟁입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한 투쟁." 세 살 때 1993년 브룬디 내전에서 엄마와 오른다리를 잃고도 살아남은 '멀리뛰기 선수' 장바티스트 알레즈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불사조, 비상하다'에서 담담히 읊조리는 내레이션이다. "올림픽에서는 영웅이 탄생하고, 패럴림픽에는 영웅이 출전한다"는 빛나는 대사의 출처가 이 영화다. 올림픽을 꿈꾸던 이탈리아 11세 펜싱소녀 베베 비오는 치사율 97%의 수막염으로 팔다리를 잘라내고도 불사조처럼 살아나, 패럴림픽 펜싱 피스트에서 날아오른다. 보통사람은 깊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 인생의 시련에 정면으로 맞서 싸워 승리한 이들은 '슈퍼히어로'다.

2012년 런던패럴림픽 남자육상 100m에서 '영국의 19세 신성' 조니 피콕은 '레전드'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를 물리치고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다. 올림픽스타디움에 운집한 8만여 명의 관중이 뜨겁게 환호하는 순간. '패럴림픽 창시자' 루드비히 구트만의 딸, 에바 로플러가 말한다. "8만 관중이 열광한 건 이것이 장애인 경기여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멋진 스포츠 경기를 봤기 때문"이라고. 장애는 극복과 감동의 대상이 아니고 장애의 반대말은 '정상'이 아닌 '비장애'이며, 장애인선수는 장애를 '극복'한 특별한 선수가 아니라 스포츠를 통해 무한한 행복과 성취감을 만끽하는 또 한 명의 스포츠 선수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 영화다. 패럴림픽의 기원과 역사까지 깨알같이 담아낸 이 영화는 패럴림픽 입문자 필수 코스다.

▶우리 곁의 슈퍼히어로가 온다

그 영화 속 불사조, 슈퍼 히어로들이 이 여름의 끝, 바로 우리 곁에 있다. 대한민국 14개 종목 86명의 선수들이 나선다. 뇌성마비 중증장애인들의 종목, 보치아엔 월드클래스 정호원(강원도장애인체육회)이 있다. 2016년 리우패럴림픽, 2016년 베이징세계선수권, 2018년 인도네시아장애인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휩쓸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2008년 베이징 대회 단체전 금메달, 2012년 런던 대회 개인전 은메달 등 출전한 3번의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한 번도 놓친 적 없는 '승부사'다. 도쿄행을 앞두고 "개인-단체 금메달 2개"라는 야심만만 출사표를 던졌다.

2016년 리우패럴림픽 불혹의 나이에 여자육상 200m에서 2연속 은메달을 따낸 후 장문의 발 편지를 썼던 1m49의 작은 거인, 전민재(전북장애인체육회). 뇌병변 장애를 딛고 발로 또박또박 써내린 그녀의 재기발랄한 편지엔 감동과 유머가 녹아 있다. 2018년부터 발 편지는 폰 편지로 바뀌었다. 한국나이 45세, 스마일 전민재가 펼칠 투혼 레이스만큼 그녀의 유쾌한 편지가 기다려진다.

휠체어농구 대표팀은 2000년 시드니 대회 이후 21년만에 패럴림픽 무대에 선다. 도쿄행 티켓을 따낸 후 암으로 지난해 9월 세상을 뜬 스승이자 동료, 고 한사현 감독 영전에 메달을 바치겠다는 일념이다. '캡틴' 조승현은 "한 감독님께서 하늘나라에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4강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도쿄에서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장애인 배드민턴엔 세계랭킹 1위 '딸바보 터미네이터' 김정준(울산중구청)이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노르딕 스키대표로 전종목을 완주한 '사이클 철녀' 이도연(전북장애인사이클연맹)도 친구같은 세 딸을 가슴에 품은 채 금메달에 도전한다. '수영을 하면 걸을 수 있다'는 말에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는 '리우 수영 3관왕' 조기성은 "2연패가 목표다. 도쿄에서 장애인 수영의 역사가 돼 돌아오겠다"고 호언했다.

이제 도쿄패럴림픽 영웅들을 소환할 시간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25일부터 시작될 '영웅'들의 중계 일정을 체크하고, 인간 한계를 넘어선 '슈퍼 휴먼'들의 눈부신 몸짓에 빠져든다면, 축하한다. '입덕 완료'다. 도쿄=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