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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인터뷰]'그날 입지못한 국대 단복' 35년만에 서울역사박물관 기증한 '86체조요정'김소영 서울시의원

[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다친 지 35주년을 기념해 서울역사박물관에 35년 간직해온 국가대표 단복을 기증하기로 했다."

'대한민국 여자체조 국가대표' 출신 김소영 서울특별시의회 시의원의 의미 있는 행보가 서울시 문화, 체육계에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김 의원은 18일 오전 11시 서울역사박물관에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선수단복과 꿈나무 일지 등 체조 국가대표 시절의 소장품 10점을 기증했다.

체육인 특유의 뚝심과 진심으로 매순간 도전하고 분투해온 김 의원의 파란만장 인생역정이 고스란히 담긴 귀중한 기증품들이다. 전도양양한 체조 국가대표였던 김 의원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개막을 앞두고 이단평행봉 훈련중 추락해, 1급 척수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장애는 장애일 뿐, 그녀는 쉼없이 달려왔다. 1995년 스물다섯 살에 국내 최초로 중증장애인 스키캠프를 열었고, 2002년 혈혈단신 5년간 미국 유학을 다녀와 상담학 학위를 받았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종목단체 국제업무 담당,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재활센터장으로 일했고, 2018년 '올해의 장애인'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18년 6월, 서울시의원에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시의원직에 도전하던 첫날 그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내가 이런 모습으로라도 살아 있어야 한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장애를 가지게 되면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제가 가진 사명은 변함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첫날의 그 약속을 지난 3년간 한결같이 지켜왔다.

내년 4년 임기 만료를 앞두고, 김 의원은 '35주년 이벤트'를 고민했다. 김 의원은 체조선수의 운명을 바꾼 '그날', 8월 28일을 매년 스스로 기념해왔다. 5년 전인 2016년, '자칭 30주년' 때는 소중한 인연들을 모두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했다. "35주년엔 뭐할까 하다 생각이 났다. 내가 갖고 있는 것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서울역사박물관에 드리는 게 가장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내게는 귀하지만 다른 분들께는 어떨지 모르겠다. 같이 나눌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기증하게 됐다. 마치 자식을 좋은 집안에 시집보내는 기분"이라며 활짝 웃었다. 김 의원은 "2018년 시의원 첫 해 서울역사박물관이 개최한 '88올림픽과 서울' 전시를 관람하며 소장품 기증을 결심했었다. 내년에 임기가 끝나는데, 마침 시의원으로 함께 일하며 마음이 통했던 김용석 관장님이 새로 부임하시면서 믿고 맡겨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1m37-30㎏, 35년 전 열여섯 체조소녀의 꿈이 고스란히 담긴 태극마크, 앙증맞은 푸른색 단복은 어쩐지 뭉클하고 애틋했다. 정작 김 의원 본인은 입어보지 못한 단복이다. "단복을 가봉한 바로 다음날 사고가 났다. 한번도 입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옷이라 어머니께서 지금까지 잘 보관해주셨다. 덕분에 더 많은 분들과 서울 체육 역사의 일부를 공유하고, 그 의미를 나눌 수 있어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다. "확실한 건 아마도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단복 중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세상에서 가장 작은 단복일 것"이라며 미소 지었다.

김 의원은 이날 1984년 중학교 2학년, 체조 꿈나무 시절 LA올림픽이 한창일 때 쓴 훈련일지도 함께 기증했다. 1m30의 키로 50m를 8.1초에 주파,제자리 멀리뛰기를 1m87이나 뛰고도 더 뛰지 못해 아쉬웠던 선수의 열정, 무엇보다 '경필 대회'에서나 볼 법한 반듯반듯 필체가 인상적이었다. 1984년 8월 15일, LA올림픽 출전했던 국가대표들이 돌아오던 날의 일지엔 '나는 언제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볼까. 그 선수들은 메달을 따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었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야겠다는 욕심을 갖고 열심히 훈련에 임하자'라고 씌어 있었다.

김용석 서울역사박물관장은 "김소영 의원님께서 소중한 사연이 담긴 단복을 기증해주셨다. 정말 감사드린다. 그 뜻을 잘 받들어 잘 보존하고 동시대인들과 공유하고 다음 세대에게 잘 계승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관장은 "'이 단복 속에 의원님의 인생이 담겼구나'라는 생각에 뭉클했다"고 털어놨다. "올림픽, 아시안게임에 나가는 국가대표들이 그냥 바로 잘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결실을 맺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땀이 배 있다는 생각도 새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의원 역시 "선수들에게 하루하루가 별것 아닌 것같지만 이 작은 땀들이 모여 결실을 이룬다. 자신의 오늘이 언젠가 역사가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늘 기록하고 물품들을 잘 간직해 후대에 남기고 공유하는 일도 함께 해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19대 국회에서 체육유공자법과 국립체육박물관 설립을 이끈 '사라예보 레전드' 이에리사 전 의원(이에리사휴먼스포츠 대표) 역시 김 의원의 행보에 찬사를 보냈다. 태릉선수촌장 시절부터 김 의원을 가까이서 지켜온 평생의 멘토다. 2014년 12월 31일 이 의원이 발의, 제정된 대한민국 체육유공자법의 모티브가 바로 김 의원이었다. 이 의원은 "김소영 의원은 대한민국 체육사에 이름이 남을 만한 사람이다. 국립체육박물관 진행이 늦어지다 보니 고심 끝에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을 결심한 것으로 안다. 서울시의원으로서 시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에 86서울아시안게임의 역사가 담긴, 본인의 국가대표 단복을 기증하는 실천은 굉장히 의미 있다"고 했다. "이런 체조 국가대표 출신 체육인이 서울 시의원이 됐고, 시의원의 소임을 잘 이행한 후 시가 운영하는 박물관에 단복을 기증하는 모습은 본인에게도 체육인으로서도 영광스럽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