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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리포트]女배구 4강 이끈 '김연경 리더십', 3가지 핵심 포인트

[도쿄(일본)=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10억분의 1 선수', 'G.O.A.T(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 '살아 있는 전설'.

한국 여자배구의 도쿄올림픽 4강행을 이끈 김연경(33·중국 상하이)을 향한 세계인의 찬사다. 한국은 숙적 일본의 8강 진출을 좌절시킨데 이어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위인 세계랭킹 4위 터키마저 꺾으며 신화를 썼다. 매 경기가 명승부였고, 손에 땀을 쥐는 순간마다 '김연경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대회전까지 다크호스로만 여겨졌던 한국을 바꾼 김연경 리더십의 핵심 포인트는 무엇일까.

▶'우리는 한배를 탔다'

김연경은 이번 대회에 나선 라바리니호의 캡틴이다. 2005년부터 16년 간 태극마크를 단 경험, 국제 무대에서 '월드클래스'로 통하는 실력 등 주장의 조건에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선수. 부담감이 큰 올림픽 무대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이끄는 역할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코치진-선수단의 가교 역할 뿐만 아니라 동료들을 일일이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도 뒤따른다. 자신을 추스를 시간 없이 오로지 팀만을 바라봐야 하는 자리다.

김연경은 이런 부담을 마다하지 않았다. 두 시간 넘는 코트에서의 움직임 동안 다이내믹한 표정 변화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고함을 치다가도 누구보다 해맑은 표정으로 동료들과 하이파이브, 포옹을 나누면서 팀 분위기를 끌어 올린다.

때론 스스로를 내던지기도 한다. 터키와의 8강전에선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에 항의하다 레드카드를 받는 장면을 연출했다. 자칫 터키 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심판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고, 이는 풀세트 접전 승리로 귀결됐다.

▶3개월의 동행, 책임감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서 다사다난한 시즌을 마친 김연경은 상하이 이적을 결심했다. 친정팀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을 때만 해도 김연경은 국내 무대에서 뛰면서 후배들과 호흡하며 V리그 흥행에 공헌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흥국생명이 잇단 사건사고에 휘말리면서 선의는 스트레스로 돌아왔다. 시즌 종료 후 쌓인 피로감, 다시 선택한 해외 무대 도전 등 김연경이 대표팀에 합류하긴 쉽지 않았다.

김연경은 국가의 부름을 외면하지 않고 이번 도쿄올림픽을 향해 전진했다. 긴 준비 과정이 이어졌다. FIVB(국제배구연맹) 발리볼 네이션스리그 준비를 위해 4월말 대표팀에 소집됐고, 5월말 이탈리아로 건너가 숙소-훈련장-경기장만을 오가는 일정으로 한 달을 보냈다.

귀국 후엔 선수단과 함께 코호트 격리 기간을 거쳐 다시 진천선수촌으로 이동해 도쿄올림픽을 준비했다. 지난 시즌을 마친 뒤 약 3개월 동안 그가 보낸 개인 시간은 1주일이 채 안된다.

김연경은 지친 기색 없이 이번 도쿄올림픽을 헤쳐 나가고 있다. 주장이자 '게임 체인저'인 자신을 바라보는 라바리니 감독과 동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금 하고 싶은 게 매우 많고, 해야 할 것도 많다. 그걸 위해 버티고 있다"는 김연경의 말은 남다른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 올림픽' 자신을 향한 동기부여

이번 대회는 김연경에겐 사실상 마지막 올림픽이다. 세 번의 무릎 수술을 극복하고 16년 간 태극마크를 달고 코트를 누볐지만,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노장'이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은 그에게 다음 올림픽을 기약하는 것은 무리다. 그동안 김연경에게 의존해 국제 무대에서 성과를 만들어낸 한국 여자배구도 이젠 그를 박수로 보내줘야 한다.

김연경은 이런 상황을 동기 부여로 삼는 모습이다. 시즌을 마치기 무섭게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3개월을 달려오면서 심신의 피로가 극에 달해 있지만, '해피엔딩'을 위해 동료들과 땀 흘리고 있다. 어쩌면 마지막 올림픽으로 기억될 수 있는 무대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더 높은 곳을 향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동메달 이후 45년만에 올림픽 메달 도전이라는 새 역사에 도전한다. 상대는 세계랭킹 2위 브라질. 지난달 25일 예선 경기에서 한국은 힘과 기량에서 한 수 위인 브라질에 0대3으로 완패한 바 있다. "여기(4강)에 만족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김연경의 하드캐리가 다시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

도쿄(일본)=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