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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지않고 이길 방법 없다' 승짱의 애태움, 멋지게 화답한 후배들[SC포커스]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승짱' 이승엽은 애가 탔다.

불혹을 훌쩍 넘긴 마흔다섯 좌완 투수를 상대로 1회 불만족스러운 단 1득점.

2회부터는 아예 속된 말로 '말렸다'. 결국 상대 불펜진에게도 끌려 다니며 8회까지 단 한점도 추가하지 못했다.

1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구장에서 열린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도쿄올림픽 녹아웃 스테이지 1시리즈.

SBS 해설 중계를 맡은 이승엽 위원의 안타까움은 이닝을 거듭할 수록 고조됐다.

상대 좌완 선발 라울 발데스의 피칭을 보는 순간부터 마음이 급해졌다. 발데스가 마운드에 있는 동안 승기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77년생 백전노장. 구위는 많이 떨어져 있었다. 스피드도 빠르지 않았고 변화구는 슬라이더 뿐. 하지만 미국전 패배 후 비난에 위축된 타자들은 조바심과 주심의 일관성 없는 스트라이크 존의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1-1이던 4회초 도미니카공화국 4번 후안 프란스시코에게 투런홈런을 허용해 1-3. 점수 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지 못한 한국 타자들의 득점 루트가 꽉 막혔다. 체증 처럼 답답하게 이어지던 흐름. 이승엽 위원의 안타까움도 고조됐다.

100구를 던진 발데스가 6회에도 마운드에 오르자 이 위원은 "우리로선 찬스"라며 "마운드에 있을 때 많은 점수를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데스의 바깥쪽 일변도의 피칭을 간파한 이 위원은 "만약 저라면 오른쪽 어깨를 더 넣고 바깥쪽 공을 강하게 당겨칠 것"이라는 해법도 제시했다. 하지만 이 위원의 애타는 마음에 대표팀 타자들은 좀처럼 응답하지 못했다.

속절없이 이닝이 거듭되면서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나마 한국팀 마운드는 추가 실점 없이 잘 버티고 있었다. 이승엽 위원은 "치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타자들에게 마지막 투혼을 당부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승짱의 간절함이 통했다. 1-3으로 뒤진 9회말, 드디어 후배들이 응답했다.

대타 최주환이 2루 땅볼을 치고 불편한 햄스트링 다리를 이끌고 전력 질주해 물꼬를 텄다. 대주자 김혜성이 과감하게 2루 도루에 성공했다. 박해민의 적시타가 터졌다.

강백호가 서두르다 2루땅볼에 그쳤지만, 후속 타자 이정후가 좌익선상 동점 적시 2루타로 한국 벤치를 열광에 빠뜨렸다. 양의지의 2루 땅볼로 2사 3루.

'캡틴' 김현수가 루이스 카스티요의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를 당겨 우익수 키를 넘겼다. 소름 돋는 끝내기 순간. 극심한 득점 가뭄 끝에 터진 단비 같은 역전승이라 짜릿함이 두배였다.

베이징올림픽 당시 깊은 슬럼프에도 끝까지 믿어준 김경문 감독에게 준결승 한일전과 결승 쿠바전 결정적 홈런으로 전승 우승을 안긴 주인공.

13년 만의 올림픽 야구를 덕아웃 아닌 중계부스에서 지켜보고 있는 한국야구사의 영웅. 이날 후배들의 반전 드라마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얼싸안고 기뻐하는 후배들을 지켜보면서 코 끝 찡해지는 하루였다.

이승엽 위원은 경기 후 자신의 SNS에 김현수의 끝내기 사진을 올리면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요기베라의 명언이 절로 떠오르는 경기였다"며 감격을 표현했다. "김현수 멋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기도 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