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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메달 못따도 괜찮아,네기술에 도전해!' 여서정銅 이끈 '엄지척'감독님

[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방금 '여서정' 기술을 제출했습니다. 결국 이 기술 하려고 올림픽에 온 겁니다."

이정식 여자체조대표팀 감독은 1일 오전, 애제자 여서정(19·수원시청)의 도쿄올림픽 여자체조 사상 첫 도마 결선 무대를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체조는 자신이 뛸 기술의 난도와 기록번호를 기재해 미리 제출해야 한다. '여서정' 기술을 제출하는 각오는 결연했다.

여서정은 1일 오후 5시52분 일본 도쿄 아리아케체조경기장에서 펼쳐진 도쿄올림픽 여자 기계체조 도마 종목 결선에서 8번의 선수 중 5번째로 연기에 나섰다.

세계 최고의 체조선수들이 총출동하는 올림픽 결선 포디움에서 여서정은 난도 6.2의 기술을 구사하는 세계 유일의 선수였다. 1차 시기서 자신의 이름을 딴 난도 6.2점 '여서정' 기술(두손으로 도마앞 짚은 후 앞공중 두 바퀴 비틀기)을 시도했다. 2019년 코리아컵에서 이 기술을 성공하며 등재했지만, 이후 2~3번의 국내외 대회에서 단 한번도 이 기술을 성공하지 못했다.

이 기술을 성공하는 것은 이번 올림픽의 지상과제였다. 공중에서 720도를 비틀어내린 후 여서정은 매트 위에 오롯이 섰다. '성공'이었다. 여서정이 두눈을 질끈 감고 환호했다. 평소 칭찬에 인색한 이 감독이 엄지를 번쩍 들어올렸다. '여서정'의 짜릿한 성공 후 2차 시기 난도 5.4 기술(옆으로 손 짚고 뒤로 손 짚어 몸펴 뒤공중 720도 비틀기)에서 착지가 살짝 흔들리며 14.133점을 받았다. 평균 14.733점. 피 말리는 혈투 끝, 전체 8명의 선수 중 3위에 올랐다. 체조인들이 그토록 간절히 염원했던 한국 여자체조 최초의 올림픽 동메달 역사였다.

이날 결선을 앞두고 이 감독은 "미국, 브라질 메달 후보들의 1-2차 난도 점수합계가 서정이보다 높다. 그 차이를 극복하려면 난도 6.2, 자기 기술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했다.

2년전 2019년 슈투트가르트세계선수권에서도 여서정은 예선에서 난도 5.8, 5.6의 기술, 전체 5위로 결선에 올랐다. 결선에서 '여서정' 기술을 시도했으나 착지에서 옆으로 넘어지며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감독과 여서정은 개의치 않았다. 올림픽 무대에서도 도전을 선택했다. "도전하면 메달권, 도전하지 않으면 4~5위다. 서정이는 가능성이 충만한 어린 선수다. 지금 우리에겐 5위나 8위나 마찬가지다. '여서정'기술을 꽂아내면 3등이고 넘어지면 8등이다. 메달을 따든 안따든, 도전해야 한다. 이 올림픽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에 도전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정이와 나의 목표는 '여서정' 기술로 착지에서 우뚝 서는 것이다. 올림픽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독보적인 기술로 성공한다면 메달을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 기술을 하려고 올림픽에 나온 것이다. 이 기술을 성공하면 메달 가능성이 높고 지도자인 나 역시 메달을 따면 좋겠지만 설령 메달을 못딴다 하더라도 우리는 메달만큼 기쁠 것"이라고 했다.

살 떨리는 결선 무대를 앞두고 이 감독은 여서정에게 이렇게 말했다. "서정아, 메달 필요 없어. 메달은 네 기술을 성공했을 때 거기에 따라오는 보상일 뿐이야. 서든 안서든 후회없이 그동안 연습한 것을 보여주자."

'여홍철 2세' 여서정은 당차게 날아올랐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아버지 여홍철이 '여2' 기술로 금메달을 따냈듯이, '여홍철 2세' 여서정이 '여서정' 기술로 도쿄의 심장에서 날아올랐다. 1998년 애틀랜타 은메달리스트 아버지에 이어 올림픽 사상 최초의 부녀 메달리스트가 탄생했다.

그리고 이 위대한 역사 뒤에는 선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온 지도자들의 헌신과 열정이 있다. 1982년 뉴델리,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국대 출신 이정식 감독,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국대 출신 민아영 코치, 허영승 코치, 최정열 코치, 박채연 트레이너가 하나로 뭉쳐 빚어낸 결실이다.

특히 이 감독은 1989년 슈투트가르트세계선수권을 끝으로 은퇴한 후 1990년부터 여자체조 지도자로 헌신해왔다. 32년만에 꿈을 이뤘다. 이 감독은 "드디어 여자체조도 하나 따냈다"며 활짝 웃었다. "서정이가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자신의 기술을 했다는 것, 한국 남자체조도 강하지만, 여자체조에도 이런 좋은 선수가 있다는 걸 세계 체조계에 보여줬다. 금메달보다 값진 동메달"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우리 여자체조인들이 서정이의 쾌거를 정말 기뻐할 것같다. 후련하다. 여한이 없다"는 말로 기쁨을 표했다. 한충식 대한체조협회 부회장(한체대 교수)은 "후배 이정식 감독에게 선후배를 떠나 지도자로서 당신을 정말 존경한다고 말해줬다. 진심으로 존경스럽다"고 했다.

'여서정' 기술을 성공하는 순간, 여서정은 이 감독에게 달려가 한달음에 안겼다. 감격에 벅찬 포옹을 나눴다. 여서정은 선수생활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된 멘토,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 질문에 "나의 선수생활에서 정신력과 '여서정' 기술을 가르쳐 주신 이정식 감독님과 내 의견을 지지해주시는 부모님"이라고 답했다. 위대한 선수 뒤엔 언제나 위대한 부모, 위대한 스승이 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