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KPGA 최초의 두 여성 경기위원, 그들이 말하는 보람과 애환

남자프로골프에는 여성 경기위원이 없었다.

올해 처음 변화가 생겼다. 한국프로골프협회(이하 KPGA)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지난 3월 '공정한 판정, 선진화된 경기 운영' 실현을 위해 경기위원을 공개 모집하면서 처음으로 여성 경기위원이 뽑힌 것.

주인공은 김해랑(28) 경기위원과 고아라(34) 수습 경기위원이다. 정신 없이 한 시즌을 마친 이들의 눈에 비친 2018 KPGA.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놀람 - "여성, 비 프로도 경기위원이 될 수 있다?"

두 경기위원 모두 KPGA의 공개 모집 소식을 듣고 도전을 결심했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여성과 아마추어란 한계 때문이었다.

골프 경영학을 전공하고 영국왕립골프협회(R&A)의 레프리 스쿨 최고 단계를 통과한 김해랑 경기위원은 "처음에 반신반의했다. 까다로운 면접을 보고 난 뒤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적은 여자 아마추어를 뽑긴 힘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후 합격 통보 문자가 와서 정말 놀라고 기뻤다. 영광이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렵고 걱정인 마음 또한 공존했던 것 같다"고 당시 느낌을 밝혔다.

다소 늦은 서른에 골프에 입문, 선수와 지도자 꿈을 꾸던 고아라 수습 경기위원은 "지원했을 때 희망보다는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도 남성 혹은 프로 위주로 뽑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종 명단에 이름이 있는 걸 보고 정말 놀랐다. 협회에서 성별과 연령 제한 없이 선발한 것에 대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사라졌고 오히려 자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행복 - "쉽지 않았지만 보람 느꼈다"

경기위원으로 활동한 첫 해. 좌충우돌,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김해랑 위원은 "처음 나간 대회들이 기억에 남는다. 골프 관계자들과 선수 모두 코스에 있는 여성 경기위원의 모습이 생소했는지 낯선 반응을 보였다. 내장객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아직 위원이라는 호칭이 어색하긴 하지만 이제는 다들 경기위원으로 알아봐 주시고 선수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한다. 그럴 때마다 감사하고 보람을 느낀다"며 "수십 번씩 공부한 내용들도 실제로 마주치면 당황하게 된다. 계속 실제 상황에 대입시켜보고 공부해야만 했다. 날씨, 코스 상황에 따라 로컬 룰을 적용하는 것도 배웠고, 경기위원들끼리 상황을 공유하며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한 해 동안 폭설, 폭우, 폭염 등을 겪으며 힘들기도 했지만 무사히 경기가 끝났을 때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아라 위원은 "글로 배운 규칙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실수를 했을 때 내가 아닌 선수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점도 늘 어렵다. 하지만 주변의 선배 경기위원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장에 있는 것 자체가 정말 행복했다"고 했다.

▶갈등 - "필드 위 판관? 감정 격해지는 일도 있다"

골프에는 심판이 없지만 판정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경기위원들이 판관 역할을 해야 하는 순간이다. 두 경기위원은 '차질 없는 경기 진행'과 '선수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이면서 정확한 판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유·불리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아라 위원은 "경기가 원활히 진행되는 것이 1차적으로 중요하지만 선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경기위원의 역할이다. 대회장에서는 변호사가 된 느낌이다. 경기 중에 선수들이 억울한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구제를 해주고 싶지만 제정상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간혹 원하는 판정을 받지 못한 선수가 감정이 격해지는 경우가 있다. 서로 감정이 상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해랑 위원은 "구제가 안된다고 말해야 하거나 제정이 끝나고 선수의 샷이 좋지 않을 때 미안하고 안타깝다. 반대로 구제 상황에서 선수가 좋은 샷으로 마무리할 때 정말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 선수의 상황에 공감할 줄 알면서 단호할 때 단호해야 하는데 솔직히 아직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어려움을 설명했다.

갈등도 있지만 보람도 있다. 고아라 위원은 "하루는 판정으로 감정 다툼을 한 선수가 경기가 끝난 뒤 찾아와 미안하다고 사과한 적이 있었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인데 작은 행동에 감동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드림 - "국제대회 위원, 지도자로 성장하고 싶다"

경기 위원은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직업이다. 판정에는 냉철해야 하지만 선수를 대하는 마음은 따뜻해야 한다. 두 위원의 목표도 같다. 고아라 위원은 "규칙을 잘 알고 정확한 판정을 제시하는 것은 기본이다. 다음으로 선수 마음을 잘 읽는 경기위원, 때로는 위로도 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경기위원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김해랑 위원은 "원리 원칙을 토대로 공정한 판정을 하되 상황에 맞게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판단력을 더 키우고 싶다. 선수들이 언제든 마음 편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신뢰할 수 있고 친절한 경기위원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들은 또 다른 꿈도 키워가고 있다. 김해랑 경기위원은 "대회 경험을 잘 쌓아 훗날 국제 대회에서 일하고 싶다. 현재 대학원에서 스포츠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골프 선수들을 돕는 심리상담사가 되는 것이 또 다른 목표"라고 말했다. 고아라 위원은 "직접 훈련을 해야 선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선수, 지도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사진제공=한국프로골프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