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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그 후]'배추보이' 이상호, 4년 뒤를 향한 '뜨거운 여름'

"올림픽 전보다 확실히 많이 알아봐주시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 스노보드 '에이스' 이상호(23)가 허허 웃었다.

이상호, 그는 개척자다. 볼모지에서 꽃을 피우는 남자. 대한민국 설상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주인공이다.

2017년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스노보드에서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이상호는 안방에서 열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새 역사를 썼다.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결승 은메달. 대한민국 스키 종목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었다. 1960년 스쿼밸리올림픽(미국)에서 도전을 시작한 한국 스키. 이상호의 메달이 나오기까지 무려 58년이 걸렸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뒤에 팬들께서도 많이 알아봐주시고, 축하한다는 말씀을 정말 많이 해주셨어요. 그런데 저는 제 자신이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메달을 땄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그래서 가끔 올림픽 경기 영상을 봐요. 그럴 때마다 정말 기분이 좋아요. 뿌듯하기도 하고요."

사막에서 핀 꽃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스노보드를 처음 접한 이상호는 고랭지 배추밭을 개조해 만든 눈썰매장에서 훈련을 했다. 변변한 인프라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던 상황. 오로지 기댈 곳은 개인의 노력과 집념 뿐이었다.

이상호의 상승세는 거침이 없었다. 특히 올림픽을 앞두고 매서운 상승 곡선을 그렸다. 평행대회전 부분에서 37위(2015년)→26위(2016년)→5위(2017년)로 가파르게 랭킹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꿈의 무대' 올림픽에서 메달리스트로 우뚝 섰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기적의 성과. 하지만 그의 인생에 안주나 멈춤이란 단어는 없다. 그는 시선은 이미 4년 뒤 중국에서 열리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향하고 있다.

"올림픽을 또 한 번 준비해야 한다는 게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더라고요.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고요. 하지만 해야죠. 그만 둘 거면 진작 끝냈을 거예요. 그래서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태릉선수촌에서 부상 치료를 했어요. 기초 체력 훈련도 빼놓지 않고 했고요. 아, 올해는 멘탈 및 심리 특강도 들으면서 공부도 했어요."

이상호는 일찌감치 대표팀에 합류해 훈련에 돌입했다.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뻘뻘나는 무더운 날씨지만, 이상호는 사이클 등으로 체력단련에 한창이다.

"가끔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한 동경을 해요. 친구들과 만나서 얘기도 하고, 여행도 하는 그런거요. 하지만 지금은 운동을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어요.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났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은 아니잖아요. 당장 올해는 세계선수권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가 있죠. 마냥 쉴 수만은 없는 시즌이에요.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고 해서 제 인생이 바뀐 건 아니에요. 저는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피끓는 청춘, 왜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싶지 않으랴. 하지만 이상호는 현재의 노력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밑거름임을 알고 있다.

"늘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내가 최고다!' 이렇게 주문을 걸면서 저 자신을 속여요. 이렇게라도 자신감을 가져야 더 열심히 훈련할 수 있는 것 같아요. 4년 뒤 베이징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할테니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한국 스키의 개척자. 그가 더 높은 목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속임, 아니다. 이상호, 그는 최고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