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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K리그 최다승' 최강희 감독 '나는 꿈을 꿨을 뿐 목표는 세우지 않았다'

언제나 위트가 넘친다. 어떤 화두를 던져도 자신만의 화법으로 수백,수 천명을 웃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스승'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유머가 멈췄다. 그가 어렵게 뗀 입에선 "송구스럽다"라는 얘기가 먼저 나왔다.

최강희 전북 감독(59)이 K리그 최고의 명장으로 우뚝 섰다. 전북이 25일 춘천 송암 스포츠파크에서 열린 2018년 KEB하나은행 K리그1 9라운드에서 강원을 2대0으로 제압하면서 최 감독이 K리그 개인통산 211승을 달성하게 됐다. 김정남 전 감독이 보유한 K리그 개인통산 최다승(210승)을 넘어섰다.

역대 가장 짧은 재임기간(13년) 안에 달성한 최다승이다. 특히 K리그 최다승 최연소 사령탑에도 이름을 올리게 됐다. 김정남 전 감독이 210승을 달성했던 나이가 65년9개월29일이었다. 김 호 전 감독 역시 64년6개월27일의 나이에 마지막 207승을 거뒀다. 재임기간은 두 감독 모두 25년이었다. 반면 최 감독의 현재 나이는 만 59세(1959년 4월 12일생)다.

최 감독은 최근 전북 완주군 봉동에 위치한 클럽하우스에서 스포츠조선과 인터뷰를 가졌다. 최 감독은 "김 호 감독님은 소속팀에서 나를 국가대표로 만들어준 분이시다. 김정남 감독님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나를 처음 대표팀에 뽑아주신 분이다. 두 분 모두 스승이시고 대단하신 분이다. 그 기록을 내가 깬다는 것, 그 분들과 비교된다는 자체가 송구스럽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이기기 급급했던 감독

이제와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니 '역경'이었다. 최 감독은 "K리그 211승? 생각조차도 해본 적 없다. 2005년 여름 전북 지휘봉을 잡고 이기기에 급급했다. 2승3무7패를 기록했다. 2006년에는 14개팀 중 12위를 했다. 선수구성이 토너먼트 대회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승강제가 시행됐다면 전북은 강등됐을 것"이라며 밝혔다.

그토록 바라던 K리그 감독이 됐는데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최 감독은 "나도 1년 아니 6개월 만에 잘릴 수도 있다고 느꼈다.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에이전트의 농간과 선수들간 파벌싸움이 심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첫 해 FA컵을 우승한 뒤 아시아챔피언스리그를 위해 선수 영입을 요청했는데 구단에서도 도와주지 않더라. 4등만 해도 목표를 달성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현실-이상의 괴리 속 버티기

현실과 이상, 딜레마가 심했다. 최 감독은 "2007년에는 12승12무12패를 기록,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2008년에는 최진철 김현수를 내보내고 리빌딩을 한다고 까불다 4연패를 했다. 이후 겨우 1무를 했는데 당시 팬들이 들고 일어났다. 사실 나도 이 팀에서 미래를 보지 못해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만 두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전임 감독님께서 서포터스 비난여론에 그만두셨다. 나도 똑같이 그만두면 축구인 자존심도 있고 앞으로 전북을 맡을 지도자에게 좋지 않은 전통이 될 것 같더라. 그래서 버텼다"고 했다. 더불어 "사실 술을 마시고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가더라도 그냥 가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팀 내 근본적인 문제보다 외형적인 것밖에 볼 수 없는 서포터스에게 팀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기다려달라고 편지를 썼다. 나를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장문의 편지를 선수들도 본 모양이더라. 후반기에 9승2무3패를 하더라. 마지막 경남전을 극적으로 이기고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성남을 이기고 4위를 했다"고 전했다.

▶이동국 운명의 시작 그리고 '닥공'

최 감독은 2008년 플레이오프에서 성남을 꺾은 것이 운명의 시작이라고 단언한다. "2009시즌을 앞두고 성남이 리빌딩을 했는데 이동국과 김상식이 이적 시장에 나왔다. 당시 조재진이 일본 감바 오사카로 둥지를 옮기면서 10억원이란 선물을 남겨줬다. 또 강민수도 제주로 떠나면서 14억5000만원이란 이적료가 발생했다. 그래서 김상식 진경선 하대성 신광훈(임대) 최태욱 에닝요에다 방점으로 이동국을 찍었다. 당시 이동국 김상식을 영입했을 때 단장님이 하신 말씀이 걸작이다. '팀을 리빌딩한다더니 양로원으로 만드신겁니까'라고 하시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동국이는 연봉 절반을 깎고 왔다. 나는 이동국에게 1% 의심도 없고 전북에 오면 반드시 잘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동국의 숨은 안티 팬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동계훈련 때 골을 넣지 못하는 동국이를 보고 코치들이 걱정하길래 '때가 되면 다 넣을 것이다. 동국이에게 골에 대한 부담을 절대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동국이에게는 '네가 손들지 않으면 나는 빼지 않겠다. 20경기 동안 골을 못 넣어도 괜찮다'고 독려했다. 개막 두 번째 경기만에 두 골을 넣은 이동국은 5월 27일 제주전에서 해트트릭을 했다"라며 영입 비화를 공개했다.

2009년 창단 첫 우승이 변곡점이 됐다. 최 감독은 "그 때부터 포지션별로 경쟁력 있게 싸우게 되면서 승수를 쌓을 수 있었다. 정상권 팀으로 유지해나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최 감독은 수비수 출신이지만 공격축구를 지향한다. 공격도 그냥 공격이 아니다. 일명 '닥치고 공격(닥공)'이다. 그는 "내가 수비수 출신이지만 성격이고 성향이 공격적이다. 수비도 기다리고 물러서는 것보다 도전적인 수비를 좋아한다"며 '닥공' 탄생 배경을 전했다.

▶행복한 지도자, 이젠 설계자

최 감독은 행복한 지도자가 됐다. 우선 환경을 개선시켰고 좋은 선수들이 많아 지휘봉을 물려주거나 내려놓아도 후임 감독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큰 욕심은 없다. 전북은 승리 DNA, 우승 DNA를 갖춘 그런 팀이 됐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잔소리 그런 것 조차도 하지 않는다. 2014년, 2015년 연속 우승하면서 이동국 조성환 박원재가 분위기를 만든다. 또 서울, 수원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얘기도 하지 않는다. 고비가 되는 경기는 스스로 이길 줄 안다"고 말했다.

최 감독의 역할은 이제 설계자다. 그는 "나는 뒤에서 큰 그림만 그린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의 자서전을 보니 퍼거슨 감독은 아침에 출근해서 관리인과 청소부까지 챙기더라. 나도 주방에 계신 이모님들까지 나하고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간 함께 생활했다. 이젠 식구 같은 분들께 더 관심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꿈을 꿨을 뿐 목표는 세우지 않았다"라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최 감독은 인터뷰를 마쳤다. 봉동=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