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신드롬'이 베트남을 강타하고 있다.
20일(이하 한국시각) 베트남 전역이 들썩였다. 이날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3세 이하(U-23) 대표팀이 중국 장쑤에서 열린 이라크와의 2018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8강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전후반 90분 간 3-3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던 치열한 혈투. 운명은 승부차기에서 갈렸다. 5-3으로 베트남이 이라크를 꺾고 U-23 챔피언십 준결승에 올랐다. 이 대회에서 베트남이 4강에 오른 건 처음이다. 베트남 축구는 물론, 동남아를 통틀어 사상 최초다. 지금까지 U-23 챔피언십 4강은 동남아 국가엔 전인미답의 고지였다. 이 벽을 박 감독이 허물었다.
경기 후 베트남 매체 '베트남 소리의 방송(VOV)은 '부임 50일 밖에 되지 않은 박 감독이 믿을 수 있는 팀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응우엔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준결승 확정 후 "정부를 대신해 팀과 박 감독에게 축하를 전한다"며 "이번 승리로 베트남의 자긍심을 고취시켰다"고 했다.
인구 1억명의 나라, 베트남은 지금 '박항서 신드롬'에 들썩이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박 감독이 보여준 지도력에 베트남이 붉게 물들고 있다. 20일 4강 진출 진출이 확정되자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와 남부 대도시 호치민 등 주요 도시마다 수 많은 시민들이 베트남 국기 '금성홍기'를 흔들며 거리를 활보했다. 워낙 많은 인파가 몰려 쯔엉 호아 빈 베트남 부총리가 긴급 안전대대책을 지시하기도 했다. 베트남에 불어온 '박항서 열풍.' 흡사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히딩크 열풍'을 보는 듯 하다. 실제 베트남 내 박 감독의 인기가 그렇다.
박 감독의 성공적인 행보. 사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국내 내셔널리그 창원시청을 이끌던 박 감독은 지난 10월 베트남 A대표팀과 U-23 대표팀 사령탑에 앉았다. 부임 당시만 해도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의구심이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긴 하나 영광의 시간은 오래 전인 과거의 일이고, 그는 그저 수 많은 노쇠한 지도자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 당시 베트남 내의 평가였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D조 1차전 한국에 1대2로 패할 때까지만 해도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이어진 호주전에서 1대0으로 승리한 베트남은 시리아와 0대0으로 비기며, D조 2위 자격으로 8강에 올랐다. 그리고 8강에서 '우승후보'로 평가되던 이라크를 제압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라크전 후 "기적은 그냥 이뤄지는 게 아니"라고 했던 박 감독. 그는 부임 후 3개월의 시간을 묻는 질문에 눈물을 터뜨렸다. 그간 박 감독이 느꼈을 부담이 짐작되는 대목. 눈물 닦은 박 감독은 또 한 번의 반란을 꿈꾸고 있다. 베트남은 23일 카타르와 대회 준결승을 치른다. 승리하면 베트남 축구 사상 최초는 물론, 동남아 축구 역사상 U-23 챔피언십 결승에 오른 최초의 국가가 된다. 베트남의 발걸음이 곧 동남아 축구의 역사가 된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