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과 수비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순간적인 상황 대처에 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4-0으로 앞선 두산의 6회초 공격. 1사후 오재원이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앞선 타석에서 오재원은 우월 2루타를 날린 뒤 선취 득점을 올린 터라 삼성 선발 장원삼으로선 신중한 승부가 필요했다. 장원삼은 볼카운트 1B2S에서 4구째 스트라이크를 찔러넣어 삼진으로 잡아냈다.
그런데 앞선 3구째에서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됐다. 오재원은 볼카운트 1B1S에서 3구째가 들어오자 번트 모션을 취하다 갑자기 자세를 바꿔 바깥쪽 공을 그대로 밀어 때렸다. 소위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fake bunt and slash)'를 감행한 것이다. 볼카운트가 스트라이크 이후임에도 오재원은 왜 그랬을까.
삼성 3루수 박석민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오재원이 번트 자세를 취하자 박석민은 재빨리 앞으로 뛰어 나왔다. 3루수 또는 1루수의 경우 타자가 번트 모션을 취하면 본능적으로 앞으로 뛰어나오게 돼 있다. 이를 본 오재원은 타격폼을 바꿔 바깥쪽 공을 그대로 밀어친 것이다.
그런데 박석민은 원바운드로 튀어오른 타구가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자 한참을 지켜보더니 글러브를 빼고는 그대로 흘려 보냈다. 파울이 될 것을 예상했던 것이다.
박석민의 판단이 옳았다. 타구는 박석민의 오른발 옆 페어 지역에 떨어진 뒤 그대로 파울 지역으로 굴러 나갔다. 불과 1~2초 사이에 일어난 오재원의 즉흥적인 밀어치기와 박석민의 빠른 타구 판단이 팬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대구=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