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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위한 이승우의 아름다운 선물, 골은 2차전으로…

지난 5월 수원JS컵 당시만 하더라도 '코리안 메시' 이승우(17·바르셀로나 B)의 머리카락 색깔은 노란색이었다. 금발에 가까웠다.

4개월여가 흘렀다. 이승우는 머리카락 색깔을 '핫핑크'로 물들였다. 당돌한 17세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여졌다. 그러나 이승우가 '핫핑크'로 염색한데는 아름다운 사연이 숨어있었다. 할머니를 위한 선물이었다.

이승우는 대동초 시절 부모님이 맞벌이였던터라 어린 시절 할머니와 보낸 시간이 길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이승우에게 할머니는 각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이승우는 할머니의 건강이 악화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특히 여든이 넘은 할머니의 시력이 좋지 않아졌다는 것이었다. 18세 이하 대표팀에 월반해 수원JS컵에 참가했을 당시에도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찾은 할머니가 그라운드를 누비는 손자의 모습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승우가 택한 것이 염색이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핑크색으로 바꾸고 경기를 뛰면 할머니가 손자를 식별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2일 무대가 마련됐다. 나이지리아와의 2015년 수원 컨티넨탈컵 17세 이하 국제청소년축구대회 1차전이었다. 이번 대회는 6월 열릴 예정이었지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연기됐다.

이날 이승우는 경기 전 국민의례가 진행될 때 환한 웃음을 보였다. 관중석에 가족과 함께 앉아있는 '멋쟁이' 할머니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모자와 스카프로 한껏 멋을 살린 할머니는 우아한 모습으로 손자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4-2-3-1 포메이션의 원톱에 선 이승우는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10월 칠레에서 벌어지는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 월드컵을 앞두고 이번 대회는 국내에서 열리는 마지막 대회였다. 할머니에게 자신이 뛰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

경기는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특유의 개인기를 폭발시켰지만, 체격이 좋은 나이지리아의 중앙 수비수 아이예토야의 압박을 극복하지 못했다. 전반 3분 중원에서 3명의 선수를 제치고 돌파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페널티박스 주위에선 위협적이지 못했다. 또 공을 받기 전 움직임이 부족하다보니 상대 수비수에게 플레이 패턴을 읽혀 파괴력있는 공격을 하지 못했다. 조직에 녹아들지 못하는 모습도 자주 연출됐다.

후반은 달랐다. 활동 반경을 최전방 중앙에서 측면으로 넓혔다. 공간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자신의 장기인 다이마이트 돌파가 이뤄졌다. 후반 11분에는 오른쪽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멋진 오버헤드킥으로 연결했지만 발이 공에 닿지 않아 아쉬움을 삼켰다. 한국은 나이지리아와 1대1로 비겼다. 전반 2분 이상헌이 선제골을 터트렸지만, 전반 26분 밤보예 이브라힘에게 동점골을 허용했다.

"할머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은 없다. 다만 경기를 보러 오실 할머니를 위해 꼭 골을 넣겠다"던 이승우, 그의 약속은 4일 치르는 크로아티아와의 대회 2차전으로 미뤄졌다.

수원=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