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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은 왜?]제주-포항 승부가른 '결정적 장면 셋'

18일 제주와 포항의 경기가 열린 제주월드컵경기장은 이른 시간부터 북새통을 이뤘다.

경기장 주변은 제주시에서 온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버스로 복잡했다. 제주만의 먹거리 이벤트인 말고기 바비큐 행사로 고기 굽는 냄새가 경기장 곳곳에서 진동을 했다. 제주는 제주에서 열리는 전국체전과 2017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개최 도시 유치를 응원하기 위해 '도민 결의 대회'를 열었다. 아쉽게 박경훈 제주 감독의 머리를 오렌지빛으로 물들이지는 못했지만, 1만7484명의 관중들이 제주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전국체전 결의식만 참가하고 자리를 뜬 관중들까지 포함하면 지난 몇년간 가장 많은 관중들이 들어섰다. 경기장 안에서는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제주특별자치도립서귀포관악단의 연주가 울려퍼졌다. 축제였다.

들뜬 관중석의 분위기와 달리 달리 양 팀 라커룸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제주는 최근 5경기에서 1승1무3패의 부진에 빠졌다. 포항은 더했다. 5경기 연속 무승(2무3패)이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 티켓을 원하는 제주와 우승경쟁 복귀를 노리는 포항은 똑같이 이번 경기를 통해 반전을 노렸다. 아름다운 선율 속 양 팀 감독의 지략 싸움이 불을 뿜었다.

#결정적 장면 1=변화의 스타팅 라인업

박 감독은 회심의 카드를 꺼냈다. 원톱에서 투톱으로 변화를 꾀했다. 확실한 원톱 자원이 없는 제주는 김 현-배일환 투톱을 포항전 필승카드로 내세웠다. 김 현의 높이와 테크닉, 배일환의 힘과 스피드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박 감독은 "포항이 최근 부진하지만 경기력은 여전히 K-리그 클래식 12팀 중 가장 좋은 팀이다. 우리가 포항을 상대로 어떻게 패했고, 고전했는지 연구했다"며 "포항이 최근 뒷공간에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포항의 스리백에 대응하기 위해 변형 투톱을 꺼냈다. 중앙에서 김 현과 배일환이 흔들면, 좌우에 포진한 드로겟과 황일수가 끊임없이 침투하는게 우리의 주 전술이다"고 했다.

황선홍 포항 감독 역시 스타팅 라인업에 공을 들였다. A대표팀에서 돌아온 김승대와 고무열을 최전방에, 섀도 스트라이커로 김재성을 기용했다. 공격에 무게를 싣고 초반에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었다. 황 감독은 "선제골을 넣으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경기라고 봤다. 상대가 스리톱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 투톱으로 경기를 하는게 효율적이고 편하다"고 말했다. 포백 카드 대신에 스리백을 택한 것은 '받아치기'의 노림수였다. 그는 "수비가 좀 더 부담이 되더라도 상대가 측면으로 파고 들면서 비는 공간을 노리겠다는 전략"이라며 "전술적인 변화가 많았던 만큼 선수들이 어려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변화가 필요했던 승부"라고 설명했다.

#결정적 장면 2=김호준의 슈퍼세이브

초반 분위기는 포항이 주도했다. 제주는 오랜만에 가동한 투톱이 어색해보였다. 포항은 김승대의 가세로 공격에 속도가 붙었다. 전반 23분 고무열의 골대를 맞히는 헤딩슛으로 분위기를 올린 포항은 3분 뒤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김수범의 핸드볼로 페널티킥을 얻었다. 박 감독과 선수들이 판정에 거세게 항의했다. 선제골이 대단히 중요한 경기였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우리는 선제골을 먹으면 이기기 힘들다. 포항 역시 최근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만큼 선제골이 어디로 가느냐가 분위기를 좌우할 것이다"라고 했다. 심판의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킥이 좋은 신광훈이 키커로 나섰다. 포항의 골을 예감하는 순간 제주의 김호준 골키퍼가 기가막힌 선방으로 막아냈다. 박 감독은 "전반전 김호준의 페널티킥 선방이 승리를 이끌었다. 오늘따라 호준이가 이렇게 커보일 수가 없다"고 웃었다. 황 감독은 "신광훈이 잘차는 선수인데 페널티킥까지 못넣었다. 심리적인 것들이 이런데서 나오는 것 같다. 팀이 안좋을때 어렵게 넣고 쉽게 먹는데 지금이 딱 그렇다"고 아쉬워했다.

#결정적 장면 3=김준수의 퇴장

0-0으로 팽팽히 맞선 후반 19분, 경기의 향방을 바꾼 결정적인 장면이 나왔다. 김준수가 배일환의 돌파를 막다 경고를 받은 것. 이미 한차례 경고를 받은 김준수는 경고누적으로 퇴장을 당했다. 팽팽했던 끈이 일순간 끊어졌다.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바뀐 포항의 수비는 흔들렸다. 숫적 우위를 앞세워 공세를 높인 제주는 결국 24분 선제골을 터뜨렸다. 배일환의 헤딩 패스를 받은 김 현이 수비를 제치며 통렬한 오른발 슛을 성공시켰다. 다급한 포항은 유창현과 강상우를 투입하며 동점골 사냥에 나섰지만 제주의 수비는 단단했다. 오히려 역습에 나선 제주가 쐐기골을 넣었다. 36분 수비수와 골키퍼 사이에 떨어지는 오반석의 롱패스를 드로겟이 과감한 문전쇄도로 잡아냈고, 골키퍼까지 제치며 골을 만들어냈다. 제주는 종료직전 김수범이 마무리골을 성공시키며 3대0 완승을 거뒀다.

4위 제주(승점 50)는 이날 승리로 그룹A 진출을 확정지음과 동시에 3위 포항(승점 52)과의 승점차를 2점으로 줄였다. 박 감독은 "이날 최대 수확은 투톱이라는 옵션의 가능성 확인이다. 그룹A에서 강팀을 상대로 쓸 수 있는 더 다양한 카드가 생겼다. 약했던 포항전 승리로 자신감도 더했다"고 웃었다. 6경기 연속 무승의 수렁에 빠진 황 감독은 "전반전 경기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는 상황을 놓친 게 결국 패배로 이어졌다"고 아쉬워 했다. 그는 "잦은 전술적인 변화 탓에 선수들이 여러모로 힘들어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도 우리가 이겨내야 할 과정"이라며 "분위기 전환이 중요한 시점이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냉정하게 남은 승부를 바라보는데 집중하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서귀포=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