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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AG]'사이클 전설' 조호성의 아름다운 마무리

결승선을 끊었다. 묵묵하게 한 바퀴를 돌았다. 아쉬움 가득한 얼굴이었다. 관중석의 팬들은 자신의 이름을 외쳤다. 손을 들어 화답했다. 하지만 아쉬움을 금할 길은 없었다. 그렇게 그는 27년간의 페달질을 마무리했다.

한국 사이클계의 살아있는 전설 조호성(40·서울시청)이 자신의 현역 마지막 경기를 은메달로 마쳤다. 조호성은 23일 인천국제벨로드롬에서 열린 사이클 남자 옴니엄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옴니엄은 이틀에 걸쳐 15㎞ 스크래치, 4㎞ 개인추발, 제외경기, 1㎞ 독주, 플라잉 1랩, 40㎞ 포인트레이스 등 단·장거리 6종목을 치르고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정하는 사이클 종합경기다. 조호성은 1일차였던 22일 15㎞ 스크래치, 4㎞ 개인추발, 제외경기에서 총 114점을 얻었다. 2위였던 류하오(중국)을 6점차로 따돌렸다. 2일차였던 이날도 승승장구했다. 1㎞독주, 플라잉 1랩까지는 선두를 유지했다. 하지만 40㎞ 포인트레이스에서 부진했다. 40㎞ 포인트레이스에서 조호성은 38점을 얻은 데 그쳤다. 40㎞에서만 96점을 얻은 일본의 하시모토 에이야에게 금메달을 내주고 말았다.

조호성의 선수 생활 자체가 한국 사이클 역사 그자체였다. 1987년 부천북중 1학년 시절 사이클을 시작한 그는 1992년 부천고 3학년 때 태극마크를 달았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 출전한 그는 1999년 베를린 세계사이클선수권대회 포인트레이스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한국 선수 최초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40㎞ 포인트레이스에서 우승을 노렸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4위를 기록했다.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한국 사이클 사상 올림픽 최고 성적이다.

세계무대는 좌절뿐이었지만 아시아에서는 최강자였다. 역대 5번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7개의 메달을 따냈다. 5개가 금메달이었다. 2002년 부산대회에서는 30㎞ 포인트레이스와 매디슨을 석권, 2관왕에 올랐다.

2004년 경륜 선수로 전환했다. 2005년부터 4년연속 상금랭킹 1위를 차지했다. 47연승의 대기록도 세웠다.

그러던 2009년 돌연 경륜에서 은퇴했다. 수억원의 연봉도 버렸다. 올림픽 메달에 대한 꿈 때문이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했다. 하지만 11위에 그쳤다. 조호성은 인천에 도전했다. 마지막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마무리짓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은메달로 마쳤다. 그래도 그의 도전은 박수받을만하다.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도전을 보여주며 스포츠맨정신을 실천했다.

이제 조호성은 지도자로 변신한다. 자신이 못 다 이룬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뤄줄 선수를 길러내는 것이 '도전자' 조호성의 다음 과제다. 인천=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