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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문형렬의 '어느 이등병의 편지'

이렇다 할 기대는 하지 않았다. 축구와 군대 얘기라면 질색한다는 여성의 심정이었다고 할까. 가수 김광석을 내세운 홍보 문건도 그다지 달갑지는 않았다. 읽어야 한다는 약간의 의무감이 작동했다고 했을지.



작가 문형렬의 장편 '어느 이등병의 편지'(다온북스, 238쪽) 읽기는 그렇게 시작했다. 양구에서의 군대시절을 회상한 이 작품은 30년 후에야 완성한 작가의 자화상이다.

책을 읽으며 웃다가 또 웃다가, 갑자기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는 뭉클함을 감내해야 했다. 책 읽는 도중 '큭큭'거리기는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이후 오랜만의 경험이지 싶다.

'가장 악질적인 공중제비 상병이 변소 벽에 줄지어 선 졸병들을 무섭게 노려보더니 3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달려와서는 공중으로 붕 떠올라 졸병들을 향해 이단 옆차기를 내지르는 것이 아닌가. 그는 세 번째 순서였고 나는 네 번째였다. 졸병들은 고참의 공중 옆차기에 가슴팍을 맞고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런데 그의 차례가 오자 그는 잽싸게 피하고 말았다. 공중제비 상병은 변소 시멘트벽에 발을 부딪히고는 죽는다고 비명을 질렀다....공중제비 상병은 의무대로 실려 가더니 바로 야전병원으로 후송을 가버렸다, 발목이 부러진 것이다.'(133p)

'최주복이 졸병 군기를 잡는답시고 우리를 침상에 세워놓고 이소룡의 쌍절곤을 들고 흉내 내다가 그만 제 머리를 '탱!'하고 때렸다. 그런데 그 소리가 어마나 청아했던지 나도 모르게 그만 "하하하!"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왜 그렇게 웃었는지 나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172p)

문형렬은 소설가이지 시인이다. 그의 글은 산문이면서 동시에 시적인 운율을 지니고 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주제는 항상 애잔한 '그리움'이다.



'내가 동부전선에서 가지고 나오고 싶었던 것은 해 질 녘, 하늘을 쏘아 오르는 샛별과 동터오는 새벽하늘의 빛나는 꿈이었지만 결국 얼룩진 그리움처럼 흐려지는 눈빛만을 가져 나오고 말았다. 나는 그 시절로부터 소리 없이 멀어져갔다. 아니, 그 시절을 하나의 장식처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되돌아보면 한갓 얼룩진 그리움으로밖에 간직하지 못한 지금이 오히려 내게는 진정한 실명기인지도 모른다. 거칠게 파고들었던 눈보라와 적막했던 체온의 편린들은 아직도 한순간이나마 가슴을 섬광처럼 타오르게 만들었지만, 정말 내가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가슴에 품어 안았다면 그것은 지금 내 몸속 어디에서 빛을 밝히고 있을까.'



작가 문형렬에게 물었다. 소설속 캐릭터들은 실제 인물들인가?

그는 답했다. "나의 분신일수도 있고, 실존 인물일수도 있다." 아마 군대를 다녀온 이 땅 모든 남성들의 이미지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 읽기를 끝마쳤을 때, 눈 내리는 산사를 묘사한 한편의 아름다운 시를 감상한 느낌이었다. 갑지가 막막해지고, 그리워졌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작품이 좀 더 알려져야 내가 동료들한테 덜 미한 할 텐데..." 그의 말끝이 흐려졌다.나성률 기자 nas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