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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림의 엄마꿈 인터뷰⑭]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딸의 엄마가 아닌 발레단의 엄마 (3)

▶딸의 엄마가 아닌 국립발레단의 엄마

박-그렇게 다시 프리마돈나로 돌아오셨는데, 예전과 다른 게 두 딸이 있어요. 육아를 하면서 발레단에 단원으로 있다는 것, 현실은 어땠나요?

최-항상 과거를 잊어야겠다 생각하지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더라고요. 제가 뉴욕에서 아침에 30분 열심히 연습하고, 나머지 모든 걸 해낼 수 있었던 경험이었어요. 집에서 아기에게 1시간 사랑을 줄 수 있으면, 8시간 같이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스킨십을 했어요. 아침에 둘을 집에 놔두고 출근할 때, 어머니들이 아이를 버스에 태우는 걸 보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저도 그렇게 해줘야 하는데. 그러나 연습실에 가면 그걸 딱 잊고 연습만 했어요. 일단 끝나면 아기랑 더 열심히 놀아주고 요리 하고요. 그런 식으로 밸런스를 맞추면서 열심히 살았어요.

박-도와주는 분이 계셨나요?

최-어머니의 언니, 이모님이 한국에 한 분 계셨고, 엄마도 일본에서 공연 때마다 오셨어요. 그렇지 않으면 혼자서는 무리였죠.

박-그럼 애들이 어린이집에 일찍 갔겠어요.

최-걷기만 하면, 두 살부터 최연소로 미술학원에 보냈어요. 외국에선 보통 여자들도 활동하는 사람 많아서 아기 봐주는 곳이 많은데, 한국은 잠깐 갔다가 너무 빨리 보내요. 좀 봐주셔야죠. 여자들도 일해야 하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25년 전에는 그런 곳이 더욱 없었죠. 그래서 열심히 연습하다가, 집에 일찍 와서 애들과 있으면서 자기 시간을 나눠서 쓰곤 했죠.

박-네 살 터울이면, 한 살일 때 다섯 살이고 그랬겠네요. 연습 들어가면 3달 연습하고 집에도 늦게 들어가고 그랬을 텐데 정말 힘들었을 거 같아요.

최-그때는 엄마도 자주 오셨고, 이모도 계셨고, 도와주신 분도 계셨어요. 그러니까 가능했죠. 아무래도 그런 도움이 없었다면, 일과 육아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거냐고 하면 아기를 선택하지 않겠어요.

박-큰 따님이 또 발레리나이시죠.

최-정말 안 했으면, 안 했으면 했는데. 아기를 집에 놔두기도 그렇고, 아기랑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서 발레 학원 데리고 다니면서 보고 따라하게 되더라고요. 중간에서 하지마라고 하더라고요. 둘째는 하다가 '엄마 아니야'하고 6학년 때 그만뒀어요. 저는 다른 길로 가서 마음 편하게 친구 사귈 수 있길 바랐어요. 진짜 편하게 친구를 사귈 시간도 없고, 발레 계 사람들과 진짜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로워요. 지금은 다시 학교 가서 공부 시작했어요. '엄마 왜 일찍 발레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냐'고 하는데, '그러니까 네가 말 안 들었잖아'그래요. 그래도 하고 싶은 걸 부모가 말리진 못 하잖아요. 자기가 하고 싶을 때까지 했어요. 이제는 학교에서 공부 시작했는데, 공부도 재미있다고 하네요.

박-아이들이 자립적으로 성장한데는 감독님의 교육법이 있었을 텐데요. 어떤 교육관이 있었나요?

최-원하는 걸 시켜주자고 생각했어요. 한국에 와서 너무 놀란 게 많았어요. 어머니들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선생님을 찾아가야 한다는데, 전 애가 몇 반인지도, 담임선생님 이름도 몰랐어요. 그래서 애들한테 엄청 혼났어요. 그래도 자립심은 많이 강해져서, 항상 책임감은 잘 가졌어요. 혼자 맡은 일에서 도망가지 않고, 스스로 잘 해줬어요.

박-아무리 내가 힘들고 시간이 없어도 아이들에게 꼭 해주신 게 있나요?

최-아침에 도시락은 꼭 챙겨줬고요. 발레단 단장이 되고 나서는 어려웠지만, 무용수 할 때는 더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서 주말엔 아무리 힘들어도 꼭 도시락 직접 만들어서 피크닉을 나갔어요. 일단 휴일이면 무조건 나갔어요. 발레 때문에 걷기가 어려워도, 놀이동산 가서 같이 놀고 걸어 다니고 했어요. 그게 또 기뻤고요.

박-엄마가 워낙 바빴기 때문에 두 딸한테 미안한 게 있었을 거 같아요.

최-많이 미안하죠. 큰 애가 발레를 하면서 하루는 울면서 '빨리 오라고' 전화를 했어요. 정동극장 마당에서 애가 '엄마 발레단 그만둬. 엄마가 발레단 단장이니까, 내가 이렇게 미움 받고, 오해도 받고,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인정을 못 받는다'라고 하면서 우는 거예요. 애를 다독이면서 할 수 있는 말이 '미안하다'밖에 없었어요. '괜찮아. 그 사람들은 무시해'라고는 말 못하죠. 다들 발레 계에 있는 애들인데, 발레 계에서는 큰 딸의 엄마가 될 수 없었어요. 똑같은 학생이죠. '그래, 그 애들 나쁘네'라고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이해해라. 엄마는 엄마가 아니다. 엄마는 항상 선생님 아니냐'라고 했는데 정말 미안했어요.

박-딸 입장에서도 많이 속상했을 거예요. 엄마가 최태지이기 때문에, 늘 최태지란 이름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거예요.

최-그래서 항상 발레단에 사표를 가지고 있었어요. 애가 진짜로 싫다고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사표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애가 그렇게 울다가도, 엄마를 이해해줘서 계속 있을 수 있었죠. 그리고 다른 엄마처럼 더 열심히 애를 위해서 밀어줬으면 더 많이 활동했을 거예요. 한국에 놔두면 안 된다는 생각에 외국 유학을 시켰죠. 한국에 있으면 학교에서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서 캐나다 발레학교로 보내니까 오히려 더 밝아지더라고요. 엄마로서 같이 데리고 있지 못하니까, 지금도 언제나 미안하죠. 항상 인터뷰하면서 발레단 단원들을 '우리 새끼'라고 하니까, 집에 가면 애들이 '엄마 새끼는 우리 아니야? 엄마는 항상 우리보다 발레단을 생각한다'라고 하더라고요. 자립심은 키웠지만, 항상 마음속에서 '내 엄마는 항상 다른데 있다'란 생각을 했다는 게 지금도 미안하죠.

박-키울 때는 힘든 시간이 많았겠지만, 지금은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됐잖아요. 감독님 이후 발레리나도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발레리나에게 결혼과 출산은 어떤 의미인가요?

최-저는 더 했으면 좋겠어요. 20대엔 스스로 대단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기량, 테크닉에 빠지지만, 30대부터는 진짜 내면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야 해요. 발레리나는 연기력이 꼭 필요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진짜 사랑하고, 진짜 아픔을 겪어야 하죠. 그리고 아기를 키우면서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도 배우고요. 베풀 수도 있어요. 저같이 80㎏ 돼도 다시 무대 설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있으면 좋겠어요.

박-40년 동안 발레랑 함께 사셨어요. 앞으로 또 새로운 꿈이 있을 까요?

최-지금까지 멀리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저는 현실적인 여자이에요. 예술도 좋아하지만, 현실을 하루하루 사는 거죠. 그렇게 도망가지 않고 여기까지 왔어요. 꿈이 있다면 진정으로 애들의 진짜 엄마가 되는 거예요. 항상 어디 가지 않고, 애들과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박-누군가에겐 일상이고 소박한 일이 감독님에게는 꿈인 거네요. 단장님은 누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일상으로 이루고 계신데요. 인생이 참 이래서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예술이 멀리 있지 않은 거 같아요. 아이를 키우고 아이와 하루를 전쟁같이 치루는 게 예술 일 수 있는데 지금 예술을 하고 있는, 육아를 하고 있는 대한민국 엄마들과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성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최-힘 드는 일이 있어도 용기를 내십시오. 됩니다. 저도 젊었을 때 이런 얘기를 들으면 '아니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러나 진심으로 자기가 원하는 일은 됩니다. 자기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집중하세요. 꿈은 이루어진다.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박경림이 본 최태지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는 최태지 단장은 아름다운 자태만큼이나 눈부신 미소를 갖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내게 먼저 손 내밀어 반갑다고, 와줘서 고맙다고, 환하게 인사를 건넸던 것처럼, '해설이 있는 발레', '찾아가는 발레'로 대중에게 발레를 알리고 먼저 다가가기를 서슴지 않는 그녀는, 우아한 토슈즈를 벗어던지고 한국발레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누구든 찾아가는 맨발의 프리마돈나다. 대한민국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기까지, 그리고 두 아이의 출산과 최연소 국립발레단장에 오르기까지, 그녀는 그녀가 춤추었던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처럼 끝없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내 머릿속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토슈즈와 함께 예술가로서의 고독과 아집을 벗어던지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미덕과 특유의 밝고 쾌활함으로 한국발레의 미래를 위해 어머니의 희생으로 앞장서는 그녀가 있어 대한민국 발레는 오늘도 안녕하다.

한편, '박경림의 엄마꿈 인터뷰'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 인터뷰는 6일 오후 7시 케이블TV 여성채널 트렌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리=박종권 기자 jkp@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