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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림의 엄마꿈 인터뷰⑭]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 발레란 향수를 뿌리는 여자(1)

스포츠조선이 대한민국의 엄마들을 응원하는 '엄마도 꿈이 있단다'(이하 엄마 꿈) 캠페인 인터뷰를 합니다. '엄마 꿈' 캠페인은 많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엄마들에게 작은 희망과 용기를 주고자 기획됐습니다. 엄마이자 아내, 그리고 방송인으로서 자신의 꿈을 사회에서 당당히 펼치고 있는 박경림씨가 우리의 엄마들을 대표해 사회 각계각층의 스타 엄마들을 직접 찾아가 만납니다.

정리=박종권 기자 jkp@sportschosun.com

▶발레란 어렵다, 고상하다, 지루하다란 편견을 깨고 있는 여성이 있다. 36세란 최연소 나이에 국립발레단 단장을 맡은 최태지가 그 주인공이다. 해설이 있는 발레를 시작으로 찾아가는 발레까지, 발레 대중화를 위해 지금도 몸 바치고 있다. 발레리나와 단장의 경력은 최태지를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게 하지만, 알고 보면 그녀는 재일교포로 혈혈단신 한국으로 건너와 대한민국의 발레란 높은 벽을 깬 강단 있는 여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어렵게 결혼과 출산이란 장벽을 넘어선 평범한 엄마이기도 하다.

박경림(이하 박)-너무 놀라운 게, 지금 감독님이고 현역으로 무대에 서지는 않으시죠?

최태지(이하 최)-그렇죠. 20년 동안 무대에 안 섰습니다.

박-그런데, 어떻게 이런 몸매를 유지하는 거죠.

최-아무래도 단원들이 열심히 연습하고 큰 공연을 앞두고 있어서, 항상 저도 긴장하고 있으니까요.

박-발레리나로 무대에 섰을 때와 밖에서 감독을 하는 지금, 어떤 게 더 좋으세요?

최-처음에 1996년에 발레단 단장할 때가 서른여섯 살인데 갑자기 자리에 오게 되니까, 너무 긴장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몰랐어요. 진짜 무대가 그리울 때 많았어요. 책임감은 있기 때문에, 단장 되는 날 토슈즈와 발레복 다 던졌어요. 그리고 인터뷰할 때 발레리나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면 절대로 안 했어요. 일부러 발레리나 같이 보이지 않도록 노력을 했죠. 지금 행정 일을 많이 해서 그렇지만, 항상 무용수들이 무대 올라갈 때 머리 속에서는 같이 춤추죠.

박-1983년에 처음으로 서울에 오셨어요.

최-30년 됐네요. 일본에서 시작해서 프랑스, 뉴욕에 다녀왔지만 쭉 일본에 있었어요.

박-어떻게 한국에 오시게 된 거예요?

최-재일교포로 살면서 발레라는 세계의 언어를 했기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문화청에서 해외연수를 보낸다고 내정 됐다가, 마지막에 서류에서 일본 국적자만 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저의 정체성, 존재감을 많이 느꼈어요. 너무 좌절했지만, '한국에 가봐라. 일본에도 없는 국립발레단이 있단다'란 얘기를 듣고 왔어요. 83년 국립발레단에 엄마랑 같이, 남산에 올라가는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있어요. 국립발레단이란 자부심과 국립발레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거 같습니다.

박-일본에서도 국적 때문에 힘들었지만, 한국에서도 쉽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이 들어요.

최-그때 임성남 단장님이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저를 데리고 오신 거 같아요. 한국에 와서 역사를 잘 모르다가, 일본이랑 한국의 관계를 알게 됐는데, 지금도 어려운데 30년 전에는 오죽 힘들었겠어요. 단장님이 안 계셨으면 여기에 있지도 못 했고, 발레단에서 힘들 때마다 단장님이 배려해 주신 날들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박-최연소로 단장님이 되셨는데, 그때도 분위기 장난 아니었을 거예요?

최-연습실 밖을 안 나가서 밖에서 얼마나 시끄러운지 몰랐어요. 그때는 한국말 이해도도 낮았기 때문에 한마디로 무식하면 용감한 거였죠. 분명히 많은 이야기가 있었겠지만, 단원들이 저한테는 큰 힘이었어요.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우리 후배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뭔지만 생각했죠.

박-최태지 단장님을 평가할 때 공정의 리더십이란 말씀을 많이 해요. 학연, 지연, 혈연 이런 거 전혀 안 따지고 실력으로만 평가를 한다고요.

최-제가 학연이 있던 게 아니라서 저한테 맡기신 게 아닐까 싶어요. 여기 와서 학교, 라인이란 거에 너무 놀랐어요. 제 가치관도 그랬습니다. 진짜 잘하는 사람, 관객이 좋아하는 사람을 세워야 한다. 그런 사람을 뽑아야겠다고 했죠.

박-공정의 리더십을 보여줬고, 해설이 있는 발레, 스타 무용수 육성, 티켓 가격도 인하했어요. 가장 놀라웠던 게 찾아가는 발레예요. 군부대, 땅끝마을, 백화점 앞 상설무대. 사실 백화점 무대는 많은 분들의 비판과 비난이 있었어요.

최-예, 있었어요. '발레를 슈퍼마켓에서 하냐', '발레는 고급예술이고, 오페라 하우스 보여줘야 하는데, 왜 극장을 떠났냐'고 했어요. 한국에 들어와서 봤더니, 발레를 한 번도 안 보신 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저는 마케팅이라고 생각했어요. 무료로 한 번이라도 보여드리면서 다음에 하는 공연 브로슈어 나눠주면서 다음 공연을 알릴 수 있는 장을 만들었죠. 제일 기뻤던 건, 백화점서 유모차를 미는 엄마들이 계속 공연 보고, 아기들도 일어나서 보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바로 이런 공연을 국립발레단에서 많이 해야 하지 않냐. 발레 티켓이 10만 원 이상인데 예술이란 건 돈이 있거나 없거나 즐길 수 있는 겁니다. 누구한테나 다가가 보여주면서 마음속에 발레라는 향수를 뿌리고 싶어요.

▶[박경림의 엄마꿈 인터뷰⑭]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 (2)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