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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홍성흔, '화려함'을 벗고 '성실함'을 입은 이유

"이제 나이도 있고, 주장인데. 수수하게 가야죠."

올해 친정팀 두산으로 돌아와 주장을 맡은 홍성흔(36)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롯데 소속으로 뛰었다. 롯데 시절의 홍성흔은 대단히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4시즌의 평균 타율이 무려 3할3푼(1721타수 568안타)이나 된다. 더불어 자신이 롯데에서 뛰던 기간에 팀을 모두 포스트시즌으로 이끌기도 했다. 물론 홍성흔 혼자만의 활약으로 롯데가 포스트시즌에 여러번 나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홍성흔의 역할이 컸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홍성흔은 이 시기에 실력 뿐만 아니라 화려한 패션과 입담으로도 팀의 간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올스타전이나 매 시즌이 끝난 뒤 열리는 각종 시상식에서 화려한 패션과 퍼포먼스로 큰 인기를 끌면서 마치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같은 존재감을 빛냈다. 낯선 부산에서 홍성흔은 단숨에 지역팬들의 사랑을 끌어모은 인물이 됐다. 두 아이를 둔 30대 중반의 가장이었지만, 패션과 스타일에 관해서는 웬만한 20대 선수들보다 더 뛰어났다.

그런데 그랬던 홍성흔이 올해 두산으로 돌아와서는 '아저씨'가 다 됐다. 스포츠형으로 짧게 다듬은 머리스타일이나 넉넉하고 펑퍼짐하게 입은 유니폼 바지 모양에서 영락없는 30대 후반 아저씨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롯데 시절이었다면 최신 유행의 머리 스타일에 딱 붙는 바지로 스타일을 한껏 살렸을 테지만, 지금의 홍성흔은 이런 외형에 관한 관심을 딱 끊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5년 만에 돌아온 친정팀에서 다시 두산의 끈끈하고 뚝심있는 야구 스타일에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점점 40대를 향해가는 나이이다보니 외모에 신경을 쓰는 시간을 아껴 더 야구에 집중하겠다는 각오도 컸다. 그래야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면서 자신의 이름값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불어 복귀하자마자 두산의 주장을 맡았다는 점도 홍성흔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됐다. 홍성흔은 3일 광주 KIA전을 앞두고 "두산은 롯데와는 스타일이 다르다. 또 나도 나이가 점점 들다보니 화려한 것보다는 편한게 좋더라. 머리도 그래서 짧게 자르고, 바지도 통 넓게 입었다"면서 "게다가 주장이다보니 그런 외모보다 후배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변신의 이유를 밝혔다.

화려한 스타일은 버렸지만, 야구 실력은 여전하다. 홍성흔은 3일 경기 전까지 125경기에 출전했다. 팀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나와 꾸준하게 활약했다. 타율도 2할9푼8리(460타수 137안타)에 14홈런 69타점으로 롯데 시절 못지 않은 화력을 과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연속 경기 출루기록이 홍성흔의 성실함을 대변한다. 홍성흔은 지난 7월 17일 잠실 NC전 이후 매 경기에서 1번 이상씩 출루했다. 3일 KIA전에서도 1회부터 적시안타를 날리며 연속경기 출루 기록을 '53경기'로 늘렸다. 올해 최다 기록이다. 앞으로 5경기에서 더 출루하면 홍성흔은 이종범 한화 코치가 과거 해태 시절에 달성했던 58경기(1996년 7월 28일 광주 현대전~1997년 4월 26일 인천 현대전)의 역대 3위 연속 출루기록과 타이를 이룬다.

연속 경기 출루는 성실함과 실력이 모두 겸비돼야 가능한 기록이다. 홍성흔 역시 다른 기록보다 연속경기 출루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안타나 타율, 홈런도 소중하지만 연속경기 출루에는 더 각별한 마음이 든다. 앞으로도 계속 기록을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제 두산은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있다. 홍성흔은 올해까지 프로 15시즌 동안 무려 12번이나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던 단골 손님이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도 그의 노하우가 두산에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화려함 대신 성실함의 옷으로 갈아입은 홍성흔이 이번 가을잔치에서 어떤 활약을 할 지 기대된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