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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L 결승' 다가간 서울, 어떻게 상대 부쉈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테헤란으로 날아가 고지대를 견뎌내야 한다. 악명 높은 아자디 스타디움의 야유도 이겨내야 한다. 다만 '2-0 승리'라는 지원군을 안고 그곳에 입성한다는 것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한 골을 더 넣었을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을지 몰라도,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승리였다. 25일 저녁 7시 30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4강 1차전, 서울은 어떻게 이란의 에스테그랄을 부쉈을까.

▶ [전반전] 답답했던 경기력, 그 와중에 데얀은 클래스 입증.

1, 2차전 합계 180분을 뛰어야 하는 4강전. 그중 원정에서의 첫 45분에 나선 에스테그랄은 조심스러웠다. 틈틈이 공격을 노렸지만, 엉덩이를 본인들의 골문 쪽으로 뺀 수비적인 기조가 강했다. 그렇다고 서울과 견주어 활동량이 부족한 건 절대 아니었다. 공격진은 쉴 새 없이 전방 압박을 가했고, 특히 윙포워드까지 폭넓게 움직여 서울 플랫 4의 전진 패스를 틀어막으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역삼각형의 중앙 미드필더 역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라인 간격을 잘 유지해 사이 공간을 줄여나갔다. 골킥을 짧게 연결해 아랫선에서부터 볼을 점유하고 패스로 풀어 나오려 했던 서울의 의도가 많이 차단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볼이 생각만큼 전진하지 못했을 때, 서울의 최대 고민은 측면이 죽어버리는 데 있었다. 상대는 좁은 공간에서 서울을 감싸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고, 그렇게 형성된 수비 블록은 상당히 견고했다. 이를 뚫기 위해선 서울 공격진들이 조금 더 역동적으로 움직여 패스&무브를 가미해야 했지만, 그러기엔 윤일록과 고요한이 보인 흐름이 그리 경쾌하지 못했다. 측면에서 패스의 속도를 살려 그대로 치고 들어가던 한창때에 비해 홀로 볼을 잡고 패스할 곳을 찾는 데 꽤 긴 시간을 보낸 것과도 연관이 있는 부분이었다. 상대의 밀집된 전형이 열린 건 그나마 측면에서의 오버래핑이 먹혀들 때였지만, 이 루트도 만족스러운 단계에까진 도달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선제골이 터졌다. 마땅한 찬스도 없었던 시기, 중앙에서 패스를 주고받은 데얀과 몰리나가 크로스 상황에서 끝까지 집중력의 끈을 움켜쥐고 있었고, 결국 전반 39분 데얀이 머리로 선제골을 밀어 넣으며 클래스를 입증했다. '지금 데얀을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말에 이견이 있었을까. K리그 타 구단, 그리고 대표팀으로까지 시선을 돌렸을 때, 이런 스트라이커를 보유하고 있다는 건 더없이 큰 축복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역습 상황에서의 패스 루트 선택엔 아쉬움이 따랐고, 모처럼 잡은 기회에서의 크로스는 허탈하게 날아갔다. 1-0 스코어는 서울이 전반전 동안 에스테그랄의 골문을 조준한 것 대비 뽑아낼 수 있는 최상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 [후반전] 고요한의 추가골, 이후 최용수 감독의 대응은?

에스테그랄은 변화를 시도했다. 나자리 대신 마지디를 투입한 후반 시작부터 전형을 위로 끌어올린 게 확연히 드러났다. 상대가 앞으로 나오면서 최전방-최후방의 간격이 벌어졌을 때, 서울 역시 상대 진영에서 점령해 나갈 공간이 늘어났고, 이를 노린 플레이가 살아난 것이 큰 수확이었다. 여기서 터진 고요한의 추가골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후반 2분, 측면에서 공간을 만들며 차두리의 크로스를 도왔던 그가 어느새 중앙으로 들어와 반대 편에서 제공된 윤일록의 낮고 빠른 크로스를 차지한 것. 왼발에 걸릴 각도라 찬물을 끼얹는 '소녀슛'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도 했지만,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고요한은 자신의 오른발을 사용할 각도를 만들어냈다. 20대 중반의 이 선수가 보인 대단한 관록, 에스테그랄은 무너졌다.

지난 3월,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 당시 한강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가운데에서도 카타르 골키퍼가 평온히 잠들었던 것과 비교하면 ACL 4강 1차전이 열린 서울의 밤은 선선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침대에 압정을 깔아놓은 듯한 고요한의 추가골에 상대는 후반 들어 제대로 누워볼 시간도 없었다. 살아나기 시작한 고명진-하대성의 중원은 패스 배급소가 되었고, 이것이 곧 측면 공격의 시발점이 됐다. 서울은 측면을 넓게 벌려 패스 받을 공간을 선점했고, 자신들만의 경기를 펼쳤다. 고요한이 으르렁대면서 차두리 역시 치고 올라오는 빈도가 확실히 늘어났고, 측면에서 볼을 받은 이후 동료들과의 연계를 통한 다음 동작이 이어진 것이 인상적이었다. 팀 전체의 아드레날린을 제대로 분비시킨 팀 두 번째 골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원정에서 두 골을 내준 에스테그랄은 모험을 택한다. 어떻게 해서든 원정 득점을 갖고 가는 것이 그들에겐 유리했을 터. 아랫 진영엔 중앙 수비 둘만 남긴 뒤 양 측면 수비 모두 중앙선 위 1~20m 지점까지 깊숙이 올려보냈다. 데얀과 몰리나의 위치가 그대로였기에 역습을 얻어맞을 가능성도 농후했다. 하지만 그들은 더 나아가 네쿠남의 후방 볼 배급에 의존하며, 중원의 사무엘 대신 처진 스트라이커 위치에서 움직일 자원까지 투입했다. 상대가 극강의 공격 의지를 모두 드러내 보였을 때, 2-0으로 앞서나간 최 감독이 어떻게 받아치느냐도 상당히 궁금한 대목이었다. 홈에서의 1차전을 무실점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잠글 수도 있었고, 추가 득점을 통해 상대의 추격 의지를 무참히 꺾어놓을 수도 있었다.

공격에 가담하는 숫자나 최종 수비라인의 위치를 봤을 때, 딱히 물러설 생각은 없어 보였다. 여기엔 김주영, 김치우 등 안정된 수비력을 보인 후방에 대한 믿음도 있었을 것이다. 상대가 나오면서 그 뒷공간을 치려는 움직임은 꾸준했고, 3-0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도 강했다. 이렇게 35분 정도를 보낸 최 감독은 고요한 대신 한태유를 넣어 노선의 변화를 택한다. 안정감을 기하면서도 에스쿠데로-데얀-몰리나로 이뤄진 외국인 3톱의 역량으로 쉼 없이 골문을 노렸다. 때로는 공격진의 끓어오르는 기세와 반대로 수비진에서는 냉정한 모습을 보여야 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무실점으로 마치며 결승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 경기. 이제 K리그 팀의 5년 연속 ACL 결승 진출을 위해서는 내달 3일 00시 30분,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릴 2차전만이 남았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