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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비난받는 대표팀 선수들, 그들의 희생도 생각하자

승승장구할 것 같던 한국 야구가 한 순간에 추락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어이없는 참패에 여론은 최악의 수준으로 치달았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탈락한 한국 대표팀 선수단은 6일 밤 귀국했다. '대만 참사'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류중일 감독은 국민앞에 고개를 숙였다. 선수들은 쥐구멍을 찾듯 취재진을 뒤로 한 채 서둘러 입국장을 빠져나갔다. 이승엽이 대표로 카메라 앞에 서서 WBC 실패의 변을 전했다.

이승엽은 "모두 기대했었는데 2라운드에 가지 못해서 팬들에게 죄송하다. 변명은 필요없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너무 많은 비난은 안 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표팀 선수들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듯 '너무 많은 비난'이라는 조심스러운 단어를 썼다.

그러나 예상대로 몇몇 선수들에게 인신공격성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 결과로 평가받는 프로스포츠의 세계에서 패배에 대한 책임이 선수에게 주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라면 비난에 앞서 먼저 생각해볼 것이 있다.

비록 부진한 경기력으로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지만 이들은 이미 적지않은 '희생'을 감내한 선수들이다. 이들 중 대다수는 시쳇말로 '답답할 게' 없는 선수들이었다. 군대 문제도 대부분 벌써 해결한 뒤다. 그래서 병역 혜택이 걸린 내년 아시안게임에 뽑히기 위해 예비절차로 이번 대회 출전을 결심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기적인 마음을 먹었다면 이런저런 핑계로 못 빠질 이유도 없는 선수들이었다. 일부 선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빠진 선수들을 대신해서 이번 대회에 차출됐다가 욕도 대신 먹는 케이스가 된 선수들도 있다.

SK 정근우는 3경기에서 단 한 개의 안타도 치지 못했다. 네덜란드전에서는 송구 실책에 베이스러닝에서도 실수를 했다. 집중적인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4타수 무안타, 실책 1개를 기록한 네덜란드전 이후 정근우의 표정에는 특유의 웃음과 장난끼가 사라졌다. 정근우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았다. 2009년 WBC 준우승 때도 주역으로 활약했다. 2005년 데뷔 이후 이번 대회까지 6번 태극마크를 달았다. 국가의 부름에 언제든 응했던 정근우다. 베이스러닝 실패도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 보려는 의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데뷔 이후 이처럼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었다. 냉정히 말해 올시즌후 FA 자격을 얻는 정근우에게 이번 WBC는 큰 매력이 없는 대회였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보면 소속팀 전지훈련에 매진해 올 1년 농사에 올인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상처만을 안은 채 시즌을 맞게 됐다.

류현진의 불참으로 대신 뽑힌 삼성 차우찬은 네덜란드전서 0-3으로 뒤진 7회 무사 1,3루서 등판해 좌타자 베르나디나에게 2루타를 맞았다. 위기에서 불을 더 지른 셈이 됐으니 강판 후 고개를 들지 못했다.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차우찬은 도류 합숙훈련 때 컨디션이 바닥이었다. 대회를 이틀 앞둔 대만 실업팀과의 연습경기 최종전에서야 실전 감각을 체크할 수 있었다. 류 감독으로부터 구위와 제구는 괜찮았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네덜란드전서 결과는 최악이었다.

노경은은 3경기서 3이닝을 던져 5안타 2실점을 기록했다. 네덜란드전 5회 1사 1루서 나가 추가점을 줬고, 대만전에서도 2사 1루서 등판해 적시타를 허용했다. 대회를 앞두고 차우찬과 노경은은 대표팀에 뽑혀 영광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첫 출전한 WBC가 그렇게 부담스러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포수 강민호는 3경기에서 모두 선발로 마스크를 썼다. 류 감독은 "대회를 앞두고 윤석민 송승준 장원준 순서대로 선발로테이션을 짰는데, 그 중 2명이 롯데 소속이었기 때문에 강민호를 선발로 썼다"고 했다. 강민호는 3경기서 9타수 무안타로 침묵했고, 네덜란드전에서는 1루 악송구로 추가점을 주는 과정에서 상대 주자의 발에 차여 오른쪽 종아리 부상까지 당했다. 강민호는 부상 후에도 두 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섰다. 합숙훈련 때부터 투수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파이팅을 외친 강민호였다.

네덜란드 전 패배 직후 한 KBO 관계자는 "선수마다 나름 이유가 있겠지만,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선수들도 이번 대회의 실패를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얻은 부와 명예를 보답하는 차원에서 베푸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번에 부진했던 선수들 대신 다른 선수가 나갔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모두 이들에게 지우기에는 현실적으로 가혹한 측면이 있다.

대회 내내 마음고생이 컸던 류중일 감독은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KBO 규정에 따라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류 감독에게 사실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았다. 모든 구단이 소속팀 선수 차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류 감독은 삼성에서만 가장 많은 7명을 뽑았다. 삼성의 전지훈련을 한 달 가까이 떠나 있어야 하고, WBC 대회 결과까지 책임져야 하는 이중고를 한 달 동안 감내해야 했다.

그러니 감독과 선수 개개인을 겨냥한 마녀사냥식 비난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대신 이번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제도적,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뼈아픈 성찰은 계속돼야 한다.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낼 수 있도록 최대의 지원과 전략을 기획해야 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도 대표팀 구성과 운영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 동기부여책 마련 등 제도 보완에 대해 전반적인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