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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00대 명산 찾기-97차 오봉산] 다섯 봉우리의 설산

<노스페이스와 함께 떠나는 한국 100대 명산 찾기-97차 오봉산>



산은 무척 정직하다. 오른만큼, 노력한만큼만 자신을 내보여준다.

여름에 땀 흘려 오르면 상쾌한 바람으로 노고를 보상해주고, 겨울에 눈과 추위를 견뎌내면 감탄스러운 설경을 선사한다.

일년 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이었던 지난 20일, '노스페이스와 함께 떠나는 한국 100대 명산 찾기'는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오봉산을 찾았다. '춥지 않은 소한(小寒) 없고, 따뜻하지 않은 대한 없다'라는 말처럼 영상의 기온까지 오른 포근함 속에 산을 누빌 수 있었다. 그러나 분명 대가는 있었다.

지난달 찾았던 강원 평창과 영월 인근의 백덕산은 얼음장 그 자체였다. 수은주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진데다 삭풍까지 불어 강원도 산의 혹독함을 제대로 보여줬다.

그랬기에 오봉산 산행 역시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 그런데 웬걸, 초봄의 내음새가 살짝 날 정도로 포근하다. 꽁꽁 동여맸던 옷깃을 살짝 푸니 마음에 여유도 생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딨겠는가. 장장 8년의 공사를 거쳐 지난해 개통된 국내 최장(5.1㎞)의 배후령터널을 지나 화천쪽에서 배후령 옛길로 접어드는데 초입부터 제설 작업이 돼 있지 않아 버스가 더 이상 오를 수 없었다. 터널 개통 전까지 춘천과 화천을 잇는 유용한 통로였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이제 굳이 눈도 치울 필요가 없는 잊혀진 존재가 됐다. 우리네 인생과 닮아 있어 왠지 짠하다.

버스가 끊긴 곳부터 오봉산 등산의 초입까지는 도보로 접근할 수 밖에 없었다. 눈길을 밟으며 40여분을 오르자 38선이 지나가는 배후령 정상이다. 오봉산 정상의 높이가 779m인데 여기가 600m이다. 수백개의 표지기가 달려 있는 곳이 산행 입구. 예상대로 처음부터 급경사가 이어진다.

춘천 토박이인 이기남씨는 딸 이수진씨와 함께 참여했다. 그동안 3번 정도 와봤다지만, 딸과는 처음이란다. 이제 출가외인이 된다면 부녀의 오봉산 산행은 어쩌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터. 이를 잘 알고 있는 아버지는 산행이 서툰 딸의 발 놓는 위치까지 일일이 알려주며 지극정성이다. 부녀의 정이 추운 겨울을 녹인다.

비로봉, 보현봉, 관음봉 등 나름의 이름이 있다고 하지만 오봉산 정상까지 그냥 1봉부터 순차적으로 5봉까지 불린다. 그나마도 이를 나타내주는 표지석도 없다. 일단 능선길에 오르자 큰 오르내림이 없다. 좌우로 시선이 환하게 트이는 가운데 오롯이 서 있는 청솔바위가 운치를 자아낸다. 병풍처럼 놓인 청솔바위 뒷쪽은 비교적 급경사의 오르막길이다.

박영길-권소진씨 부부는 지난해 결혼한 신혼부부. 보통 산행은 남편이 부인을 이끄는데, 이 부부는 반대였다. 권씨는 대학 산악부 출신이지만 남편은 등산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부인이 좋아하는 곳이니 기꺼이 따라나섰다고 한다.

임연숙씨는 혼자서 제주도 여행을 다니며 오름이나 올레길을 걷다 산행의 매력에 빠졌단다. 연인의 손을 잡고 함께 떠나도, 혹은 혼자서도 상관없다. 치유의 공간인 산은 모든 것을 품어준다.

정상을 오르다 문득 뒤를 쳐다봤다.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꽂꽂이 서 있는 소나무 뒤로 눈 덮인 산 그리메가 물결친다. 강원도는 역시 산 천지다. 백치고개쪽으로 잡은 하산길은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아 뽀송뽀송한 신설이다. 아이젠도 소용없다. 그냥 눈 위에 몸을 맡기니 눈썰매장이 저리가라다.

하산 후 탄 버스가 눈길에 다시 미끄러졌다. 모두 내려 합심해 버스를 밀어 길 위로 올려놨다. 참가자들은 "짧은 산행, 긴 이벤트"라며 함박 웃음이다. 오봉산 산행의 추억이 또 하나 아로새겨졌다.오봉산(춘천)=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오봉산 산행에는 만화가 허영만 화백이 함께 했다. 허 화백은 지난 2011년 10월 안나푸르나를 등반하다 실종돼 유명을 달리한 산악인 고 박영석 대장과의 추억담을 털어놨다. "지난 2002년 만화를 계속 그려야할지 말지 심적으로 상당히 지쳐있을 때 박 대장과 함께 오세아니아주 최고봉인 칼스텐츠(4884m)를 올랐다는 허 화백은 "비가 오고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정상에서 내려온 후 박 대장에게 먼저 가라고 했지만, 박 대장은 끝까지 나를 이끌었다. 만약 그 때 혼자 남아있더라면 죽었을 수도 있다"며 "내 생명의 은인인 동시에 대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너무 그립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오봉산은?>

높이는 779m로 소양강댐 건너 청평사 뒤에 솟은 비로봉, 보현봉, 문수봉, 관음봉, 나한봉 등 다섯 봉우리에서 산 이름이 유래했다. 1000년이 넘은 고찰 청평사가 자리잡고 있다. 기차와 배를 타고 가는 철도산행지, 산과 호수를 동시에 즐기는 호반산행지로 알려져 있다.



<산행 참가자>

김현중 권성민 최수민 김경희 임연숙 이보혜 홍진성 이현정 이호수 정천호 서원향 황준석 강병기 고운수 박영길 권소진 이기남 이수진 이은정 이승봉 서홍녀 김정열 정헌모 조춘자 이선희 권광일 정남훈 이광태 정정아 허영만



'한국 100대 명산 찾기'에 애독자를 모십니다. 2013년 2월 16~17일에는 전북 순창과 전남 담양에 걸쳐 있는 추월산(729m)을 찾을 예정입니다. 노스페이스 홈페이지(www.thenorthfacekorea.co.kr)의 '카페' 코너를 방문, '추월산'을 클릭해 접수하면 됩니다. 신청은 이번달 31일 오후 6시까지 받습니다. 이 가운데 30명을 선정해 산행에 초대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신청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