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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갖춘 호날두 '노 세리머니', 축구 세리머니의 세계

세리머니는 골을 넣은 자만의 특권이다.

사연도 제각각이다. 때론 감동, 때론 분노, 때론 웃음을 선사하며 팬들을 쥐락펴락한다.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와 함께 지구촌 축구의 양대산맥인 크리스아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가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했다. 잉글랜드와 스페인 축구의 자존심 맨유와 레알 마드리드가 2012~2013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충돌했다. 1차전이 14일(이하 한국시각) 마드리드 안방에서 열렸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16강 1, 2차전에서 패하는 팀은 탈락이다. 양보할 수 없는 승부였다. 1막에선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1대1로 비겼다. 결과보다 더 큰 감동이 물결쳤다. 전반 20분 맨유의 웰백이 선제골을 터트렸다. 10분 뒤 호날두가 날았다. 헤딩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평소와 달랐다. 경기 흐름을 바꾸는 골이었지만 표정에선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동료들이 호날두에게 달려갔지만 세리머니를 하지 않겠다고 손짓을 했다. '노 세리머니'였다.

맨유에 대한 예의였다. 포르투갈 출신의 호날두는 퍼거슨 감독이 키운 보물이다. 2003년부터 6시즌을 함께했다. 292경기에 출전, 118골을 터트리며 세계 최고의 골잡이로 성장했다. 리그 우승 3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2회, 클럽월드컵 우승 1회 등 환희의 역사를 함께 만들었다. 호날두는 맨유 시절인 2008년 국제축구연맹(FIFA)-발롱도르를 품에 안았다.

그는 2009년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맨유를 떠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맨유 입단 당시 1225만 파운드(약 228억원)였던 이적료는 8000만파운드(약 1644억원)로 폭등했다. 퍼거슨 감독의 아쉬움이 진했다. 하지만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날 적으로 다시 만났지만 호날두는 그 향수를 잊지 않았다. "맨유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6년 동안 뛰었다. 내가 골 세리머니를 하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다." 호날두는 경기 후 퍼거슨 감독과 뜨겁게 포옹했다.

축구 세리머니는 그라운드의 행위 예술이다. 개인사와 감정, 국가관, 시대의 문화적 유행 등이 녹아있다.

호날두와 비슷한 사례도 꽤 있다. 아르헨티나 축구 스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는 2000년 AS로마 이적 후 친정팀 피오렌티나전에서 득점한 뒤 세리머니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미안함에 눈물까지 흘렸다. 유로 대회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독일의 골잡이 루카스 포돌스키(아스널)는 유로 2008 폴란드와의 조별리그에서 두 골을 터트렸지만 차마 포효하지 못했다. 그는 폴란드 태생이다. "나는 두 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독일의 심장과 폴란드 심장이 모두 뛰고 있다." 포돌스키가 남긴 명언이다. 올시즌 아스널에서 맨유로 이적한 판 페르시도 지난해 11월 아스널전에서 경기 시작 3분 만에 벼락 골을 넣었지만 무덤덤한 표정으로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스널에서 뛰다 쫓겨나듯 맨시티로 이적한 토고 출신 스트라이커 아데바요르(토트넘)는 2009년 9월 아스널전에서 골을 넣고 100m를 역주행하는 세리머니로 아스널팬들의 분노를 샀다.

'악동' 발로텔리도 세리머니로 늘 회자되는 인물이다. 그는 맨시티에서 뛸 당시 맨유전에서 골을 넣은 후 '왜 항상 나만 갖고 그래(Why Always Me?)'라는 속옷 세리머니로 화제가 됐다. 또 지난해 유로 대회를 앞두고는 "인종차별을 당하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바나나를 던지면 죽여 버리고 감옥에 가겠다"는 과격한 발언을 했다. 아일랜드전의 '입막음 세리머니'도 그렇게 탄생했다. 발로텔리는 가나에서 이탈리아로 건너온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다.

동료를 위한 애틋한 정도 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결승전에서 스페인에 결승골을 선물한 이니에스타(바르셀로나)는 'DANI JARQUE SIEMPRE CON NOSOTROS'라고 적힌 속옷을 펼쳐 보였다. '다니엘 하르케는 항상 우리와 함께'라는 뜻으로 2009년 8월 심장마비로 사망한 동료 하르케를 추모하기 위해 쓴 것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에콰도르의 이반 카비에데스도 골을 뽑아낸 후 유니폼 바지 춤을 주섬주섬 뒤져 노란색 '스파이더맨' 마스크를 꺼내 뒤집어 쓰는 보기드문 세리머니를 펼쳤다. 2005년 5월 25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숨진 팀 동료 오틸리노 테노리오에게 바친 세리머니였다. 테노리오는 생전 스파이더맨 마스크를 쓰고 춤을 추는 화려한 세리머니를 펼쳐 '스파이더맨'이란 별명을 갖고 있었다.

지난해 싸이의 말춤이 지구촌을 삼킨 후 '말춤 세리머니'도 종종 등장한다. 부인, 2세 등 가족들을 위한 뒷풀이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라운드의 세리머니는 무한대다. 재치와 끼, 메시지 등이 모두 녹아있다. 축구의 흥을 돋우는 최고의 볼거리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