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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퀸·무적시절…한유미 굴곡의 배구인생

경기도 오산의 성호초등학교 시절 한유미(29·KGC인삼공사)는 '키가 많이 성장할 것 같은 어린이'에 뽑혀 배구부에 들어갔다. 자의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배구에 대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속담처럼 친구를 따라 배구공을 만지다 놀면서 배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예상과 달리 수원 수일여자중 1학년 때까지 키가 작았다. 힘도 부족해 공을 상대편 코트로 넘기지도 못했다. 볼만 줍던 한유미는 2학년 때 키가 많이 자라면서 본격적으로 훈련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쑥쑥 성장해 '연봉퀸'의 자리에 올랐다. 프로배구 여자부에 처음으로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도입된 2007년, 1억2000만원을 찍었다. 당시 현대건설은 의리를 지켰다. FA 자격을 취득한 세터 이숙자와 센터 정대영이 GS칼텍스로 자리를 옮긴 반면 한유미는 잔류를 택했다. 순식간에 팀 내 고참이 된 한유미에게 팀은 최고 대우를 약속했다. 선수에겐 부담이었다. 한유미는 "부담 아닌 부담이었다. 실력이 남들보다 뛰어나 연봉을 많이 받은 것이 아니었다. 현대건설에서 오래 뛰었고, 잔류를 선택한 보상차원이었다"며 겸손했다.

그런데 곧바로 시련이 닥쳤다. 팀이 연패를 거듭한 끝에 2007~2008시즌을 꼴찌로 마감했다. 패배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경기장에 나가는 것조차 창피했다. 심지어 경기 중 플레이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이후 자신이 팀 내에서 차지하던 비중이 적어졌다. 좋은 용병(케니)과 양효진의 기량 향상이 돋보였지만, 가장 큰 이유는 퇴보되던 자신의 기량이었다. 자존심이 강했던 한유미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해외진출을 노렸다. 외국에 나가면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질 것이라 생각했다. 도피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리그팀과 계약을 앞두고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 국내에서 다시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이미 구단과의 관계는 틀어질 대로 틀어져 있었다. 결국 한유미는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무적선수가 됐다. 지난해 순식간에 무직자로 전락했지만 한유미는 더 바빴다.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비롯해 영어학원, 경기대 스포츠경영학과 수업을 들었다. 한유미는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은 또래 아이들이 누리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한번 해보고 싶었다. 사회생활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1년을 쉬면서 한유미의 성격은 온화해졌다. 과거에는 사소한 것에 예민했다. 후배들에게 쓴소리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유미는 "나도 똑바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후배들에게 인상을 쓰면 그팀의 이미지가 그렇게 굳어지는 것을 봤다.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게 됐다"고 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