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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청룡]200분의 피말리는 설전, 2012년 영화계 미래지형도 그렸다

[애프터 청룡]200분의 피말리는 설전, 2012년 영화계 미래지형도 그렸다



2008년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손예진이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내가 청룡영화상을 받은 건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처럼 기쁜 일이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던 그 때, 내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두드려준 상"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청룡 트로피는 때로는 한 배우의 인생에 나침반이 되어주고, 어려운 제작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영화인들에게 큰 격려가 된다.

이를 절감하기 때문일까. 심사위원들은 한 표를 결정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00여분의 피말리는 혈전을 거듭한 끝에 2012년 영화계 미래지형도를 그렸다. 시상식에 담기지 못했던 그 고심의 목소리, 애프터스토리를 모아봤다.

▶설전에 설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최장 심사

시상식 당일 진행되는 심사는 대개 두 시간이면 끝이 난다. 그러나 이번엔 꼬박 200분이 걸렸다. 사실상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최장 시간의 설전이었다. 심사표가 나온 뒤 기사를 쓰고 행사 진행을 해야하는 주최측을 걱정해주면서도 심사위원들은 토론을 멈추지 않았다.

가능성이냐 완성도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세대교체 등 충무로 변화의 시기가 심사에도 영향을 미친 것. 올 청룡영화상 결과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책임감에 심사위원들은 고심했다.

▶아깝다, 심사위원들도 헷갈렸던 그 한 표

트로피 주인이 바뀔 뻔한 순간이 유독 많았다. 2차 투표에서 마음을 바꾼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비하인드 스토리 중 백미는 남우주연상. 관록의 명장 김윤석이 우세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공유가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1차에서 아슬아슬하게 한 표 차이로 2차 투표에 올라간 공유는 뒷심을 발휘하며 충무로 핫스타로 자리를 확실히 했다. 특히 무한지지를 보낸 정윤철 감독 등은 "'도가니'의 흥행은 공유를 빼고 말할 수 없다. 감정을 안으로 숨기는 연기를 제대로 소화했다"라며 공유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아슬아슬하게 고배를 마신 '무산일기'의 박정범 감독 또한 마찬가지. 1차에서 간발의 차이로 2차 투표까지 들어간 박 감독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특별히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며, 반드시 기사에 언급해달라는 당부를 거듭했다.

또한 최우수작품상을 놓고 '도가니' '써니' '고지전'이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결국 수상자로 결정된 '부당거래'와 함께 네 작품이 고루 표를 나눠가지며 3차 투표까지 진행되는 이변을 거듭했다. 심사위원들은 '써니'의 빼어난 연출력을, '도가니'는 영화가 현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점을 높이 평가하며 "트로피가 한 개 뿐이라는 점이 이번처럼 섭섭할 때가 없다"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청룡이 그린 2012년 영화계 지형도는 '세대교체'

올해 청룡의 선택은 충무로의 본격 세대교체를 알렸다. 탁월한 연기력을 인정받고, 영화계에선 늘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로 꼽히지만 그 진가를 대대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점이 1% 부족했던 이들이 상을 받음으로써 진정한 세대교체의 주인공이 됐다. 모든 수상자에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남우주연상의 박해일, 남우조연상의 류승룡이 대표적이다.

박해일은 사실 영화계에서는 오랫동안 각광받았다. 흥행작도 많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괴물', 강우석 감독의 '이끼' 등이 모두 흥행에서 성공했다. 하지만 박해일은 티켓 파워가 보증되는 '톱스타'란 인상을 주지 못했다. TV 출연이 거의 없고 영화만을 찍는 배우여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종병기 활'이 올해 최대의 흥행작이 되고,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따지는 청룡의 선택을 받음으로써 박해일은 진정한 충무로의 대들보로 거듭났다. 류승룡 역시 박해일과 유사하다. 다른 점이라면 TV 드라마('개인의 취향')를 통해 큰 인기를 얻은 적이 있다는 정도다. 충무로 캐스팅 1순위로 꼽히며 다작을 했지만, 늦은 배우 생활 시작 탓인지 상복은 없었다. 영화계의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인정 외에 무언가 더 큰 선물을 통한 자극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올해 청룡영화상 수상으로 류승룡 또한 충무로를 받치는 든든한 대들보로 확실히 평가받았다. 이정혁 기자 ·이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