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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칭 1억번과 지구 한바퀴, 정현욱 '투수란'

1억번의 피칭과 지구 한바퀴, 투수 정현욱이 걸어온 길이다.

지난주 삼성의 오키나와 마무리캠프가 진행중인 아카마구장에서 베테랑 불펜투수 정현욱과 야구에 대해 진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 질문과는 다른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갔지만, 결국엔 투수가 살아남는 길에 대한 결론으로 이어졌다.

▶투수, 공을 채는 게 아니다?

그간 야구기사를 쓰면서 '공을 챈다'는 표현을 숱하게 썼다. 실밥을 채고 그 회전력에 의해 일반인과는 다른 투수의 구위가 나온다는 게 일반론이다. 때론 '잘 긁히는 날'이란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공을 채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 처음엔 이게 궁금했다.

아카마구장에서 만난 정현욱에게 "대체 어떻게 하면 공을 챌 수 있는건가. 어떤 식으로 훈련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했다. 어깨가 아무리 좋은 일반인도 직구 구속 125㎞를 넘기 어렵다. 또 간혹 130㎞ 정도 던진다 해도 투수들이 던지는 공과는 분명 궤적 자체가 다르다.

반면 프로 투수들은 용을 쓰지 않고 가볍게 던져도 140㎞를 손쉽게 던진다. 오랜 훈련과 감각 적응을 통해 실밥을 챌 수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 차이가 난다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정현욱은 "글쎄, 나는 지금까지 오래 야구를 했어도 내가 실밥을 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다. 사람들은 보통 투수가 공을 이렇게(공인구에 손가락 끝을 대보이며) 손끝으로 긁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실제 나를 포함한 투수들은 챈다는 느낌까지는 없다"고 말했다. 정현욱은 이어 곁에 있던 투수 장원삼에게 "그렇지 않냐?"고 물었다. 장원삼도 "나 역시 손가락에 탁 걸리듯 해서 실밥을 채는 느낌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1억번의 피칭, 지구 한바퀴 러닝

그렇다면, 채는 게 아니라면 프로 투수들은 어떻게 일반인과 다른 공을 던질 수 있는 것일까.

정현욱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내 생각엔 채는 게 아니라 타이밍과 포인트를 잡는 것이다. 투수들은 수많은 피칭을 통해서 자신만의 포인트를 잡게 된다. 즉, 정확한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어떤 위치에서 손이 공을 놓는 게 최고의 직구 혹은 변화구로 들어가는지를 몸이 기억하게 된다. 그 타이밍과 포인트를 알게 되면 그때부터 공이 빨라지고 구위가 좋아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야구는, 특히 투수는 다른 종목에 비해 어렸을 때부터 배우지 않으면 나이 들어 시작하기 어려운 직업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최고 150㎞ 직구를 던지는 정현욱은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공을 던졌을까. "대충이나마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정현욱은 웃으며 "예전에 머릿속으로 그려본 적이 있는데 일단 피칭 1억개는 분명히 넘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야구를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1억개 이상 던졌다. 그리고 (투수들의 주요 훈련인) 러닝만 놓고보면 지구 한바퀴는 돌았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구 한바퀴는 대략 4만여㎞. 바로 이같은 과정을 거쳐 지금의 정현욱이 존재하는 것이다.

▶최후의 관문은 가슴이다

이튿날, 같은 주제를 놓고 훈련을 마친 정현욱과 잠시 더 얘기를 나눴다. 정현욱도 전날 못다한 얘기를 하고싶어했다.

그는 "투수가 결국엔 반복훈련을 통해 밸런스와 타이밍, 포인트를 잡아가는 과정을 거친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여기다"라고 했다. 아무리 밸런스가 좋아도 배짱이 없으면 헛일이라는 얘기였다.

정현욱은 "보통 이렇게들 얘기한다. 투수가 공 100개를 던질 때 단 한번도 똑같은 폼이 나올 수 없다. 아주 미묘하지만 어딘가는 조금씩 달라진다. 또 어떤 날에는 아예 밸런스가 안 잡힐 만큼 컨디션이 나쁠 때도 있다. 이런 거다. 완벽한 밸런스로 똑같이 매번 던질 수 없다. 밸런스는 좋아보이는데도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는 투수도 있다. 결국엔 가슴이 중요하다. '쟤는 내 공을 못 친다'는 자신감을 갖고 던지느냐 여부가 많은 걸 좌우한다. 궁극적으로는 투수는 자신감이 있어야한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좋은 공을 갖고 있어도 자신감이 떨어지면 어려움을 겪는다. 정현욱은 올시즌 초반 잠시 부진했었다. 그는 "하위타선에게 자꾸 안타를 내주면서 내 스스로 어떻게 할지 몰라 고민했었다. 또 맞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기본은 늘 같다. 투수는 먼저 어깨가 나와야하고 그후 팔꿈치, 손목, 손끝이 순차적으로 움직이는 포크레인 같은 폼으로 던진다. 정현욱은 이같은 순서를 정지동작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