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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기자석]최용수 감독대행 꼬리표 떼 줘라

주사위는 던져졌다. 선택만 남았다.

FC서울이 최용수 감독대행(40)의 거취를 놓고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의 참석차 출국한 한웅수 단장이 21일 귀국했다. '디펜딩챔피언' 서울의 시즌은 19일 6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면서 막을 내렸다.

과거를 되돌릴 순 없다. 2012년의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감독 선임이 첫 단추다. 최 감독의 운명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행 꼬리표를 뗄 지, 팀을 떠날 지는 구단 결정에 달렸다. 선택은 빠를수록 좋다. 눈을 외부로 돌리기보단 대행 족쇄를 풀어주는 것이 맞다.

엄연히 말해 올시즌은 '최용수 팀'이 아니었다. 반쪽이었다. 황보관 전 감독이 씨앗을 뿌렸다. 최 감독은 수석코치로 감독을 보좌했지만 어쨌든 모든 방향의 선택은 사령탑 몫이다. 황보 감독이 4월 26일 성적부진으로 자진사퇴했다. 구단은 곧바로 최 감독을 얼굴로 내세웠다.

보호해야 할 프랜차이즈 스타를 너무 일찍 꺼내든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계약직인 감독 자리는 명암이 극명하다. 실패할 경우 회복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는 이제 마흔 살(실제 나이 1971년생)이다.

비록 무관의 설움과 고비에서의 아픔은 있지만 연착륙에는 성공했다. 정규리그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FA컵, 컵대회 등 33경기에서 20승5무8패를 기록했다. 15위까지 추락한 팀을 3위에 올려놓았다. 올시즌 K-리그 최다연승인 7연승도 거뒀다. 경험만 축적되면 현재보다 미래가 더 밝다.

초보감독의 패기를 앞세워 새로운 문화도 열었다. 잔뜩 움츠린 K-리그에 생기를 돌게 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였다. 어록이 탄생했고, '광란의 세리머니'로 엔돌핀을 솟구치게 했다. '형님+긍정 리더십'으로 선수단 장악력에도 합격점을 받았다.

최 감독은 1994년 LG에서 프로에 데뷔했고, 2006년 은퇴했다. 은퇴 후에도 팀을 떠나지 않았다. 줄곧 코치로 감독 수업을 받았다. 단 7개월만 이용하기 위해 20년 가까이 공을 들인 것은 아닐 것이다.

제대로 된 기회를 줘야한다. 대행 꼬리표가 달린 감독이 아닌 대행 꼬리표가 없는 감독으로 힘을 실어줘야 한다.

서울은 한국 축구 발전에 한 획을 그었고, 신화는 진행형이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미래를 위해 투자했다. 중학교 3학년의 이청용(볼턴)을 영입, 오늘을 있게 했다. 박주영(아스널) 기성용(셀틱) 정조국(낭시)도 서울이 배출한 스타들이다.

지도자 최용수도 마찬가지다.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이 있다. 서울은 부인하지만 항간에는 몇몇 국내 감독과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시간이 길어지면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최용수는 서울의 색채를 지울 수 없다. 구단의 선택을 주목한다. 스포츠 2팀·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