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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의 21년 프로인생 가나다토크 '㉠가족부터 ㉭후배까지'

철인 김기동(39·포항)의 K-리그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까. 김기동은 1991년 고교 졸업 후 프로무대에 뛰어들었다. 2011년까지 무려 21시즌을 뛰었다. 하나하나가 역사였다. 필드플레이어 최초의 500경기 출전. 1993년 9월18일 LG를 상대로 교체출전을 시작으로 2011년 10월22일 전남전까지 500경기였다.

김기동에게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ㄱ부터 ㅎ까지' 14개 뽑아달라고 했다. 김기동은 "이런 인터뷰는 처음 해본다"며 호기심을 보였다. 14단어가 완성되면서 조금씩 그의 인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 : 아내 조현경씨(36)와 딸 하늘(12)과 아들 준호(9)다. 축구밖에 모르던 김기동은 연애 시절에도 밤10시만 되면 숙소로 돌아갔다. 신혼여행을 가서도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운동을 나갔다. 500경기에 출전하던 날 조씨는 남편에게 "프러포즈는 받지 못했다. 하지만 한경기 한경기가 나에게는 프러포즈였다"고 말해줬다.

㉡니폼니시 : 오늘날의 김기동을 있게 한 스승이다. 1994년 겨울 처음 만났다. 김기동은 이전 시즌 7경기 출전에 그친 풋내기에 불과했다. 니폼니시 감독의 그에 대한 믿음은 확고했다. 김기동은 니폼니시 감독에게서 체력, 패스를 배웠다. K-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당진 : 김기동의 고향이다. 고등학교 졸업(신평고)때까지 살았다. 지금도 본가가 있다. 2남3녀 가운데 막내다. 고향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역시 든든한 힘이다. 500번째 경기였던 전남전에서는 100여명의 친지 친구들이 와서 축하해주었다. ㉣리베라 호텔 : 2005년 5월 전주 리베라 호텔. 김기동은 자신의 출전 시간에 인색했던 파리아스 감독과 면담을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파리아스 감독에게 "우리는 둘 다 1년 계약이다. 서로를 믿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준비돼 있다"고 했다. 김기동은 다음날 열린 전북전에서 풀타임출전했다. 팀도 2대0으로 이겼다. 이후 포항의 주축 자리를 확고히 했다.

㉤멀티플레이어 : 김기동은 3~4개의 포지션을 소화한다. 수비수, 미드필더, 섀도스트라이커를 다 해낼 수 있다. 멀티플레이어 능력으로 A대표팀에도 발탁됐다. 하지만 1997년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1998년 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전에서 0대2로 패하며 비난을 받았다. 이후 A대표팀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부상 : 부상은 크게 없었다. 하지만 한번 당하면 컸다. 3차례였다. 1997년 왼쪽 무릎을 다쳤다. 4개월을 쉬었다. 2004년 왼쪽 무릎을 다시 다쳤다. 수술대에 올랐다. 다들 '김기동은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4개월만에 이겨냈다. 2008년에는 발가락이 부러졌다. 역시 4개월이었다. 부상을 매번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강인한 의지 덕택이었다.

㉦40-40 : 김기동의 다음 목표는 40-40클럽이다. 현재 39골-40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딱 1골만 추가하면 K-리그 통산 12번째로 40-40클럽 가입자가 된다. 기회가 많지는 않다. 언제 은퇴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기동은 매 경기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다. ㉧우승 : 혈기왕성한 20대에는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유공(부천, 현 제주)을 거치면서 준우승만 2차례 했다. 30줄에 접어든 2003년 포항에 입단했다. 2004년에도 준우승에 그쳤다. 2007년 생애 첫 K-리그 우승컵을 들었다. 2008년에는 FA컵을 제패했다. 2009년에는 컵대회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트로피를 높이 들었다.

㉨지도자 : 서서히 준비하고 있다. 선수들을 믿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선수들이 따라오고 존경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기동은 "솔선수범, 그리고 옆집 형같은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다. 밑바닥부터 시작할 마음도 돼있다"고 말했다.

㉩취미 : 축구만 해왔다. 담배는 배우지 않았다. 술 역시 어쩌다 먹는 맥주 한잔이 전부다. 다칠 우려가 있다며 레저활동도 자제한다. 스키는 부천 시절 한번 탄 뒤 접었다. 유일한 취미는 골프다.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을 친다. 현역 선수들 중에는 자신과 맞설 사람이 없다고 자부했다.

㉪키맨 : 포항의 핵심 선수다. 이제는 벤치 멤버이지만 여전히 포항 선수들의 정신적인 지주다. 김기동은 언제나 둥글다. 조카뻘 되는 신인 선수들에게도 먼저 다가간다. 힘들어하는 선수들 옆에는 언제나 김기동이 있다. 포항 선수들에게는 큰 형님 그자체다. ㉫퇴장 : 500경기를 치르면서 경고는 35장 밖에 받지 않았다. 몸싸움이 많은 미드필더, 그것도 수비형 미드필더 치고는 깔끔한 편이다. 축구센스가 뛰어나 반칙을 하더라도 선을 넘지 않는다. 퇴장은 단 2번 밖에 없었다. 2008년 FA컵 전남과의 16강전이었다. 4개월만에 복귀한 김기동은 거친 태클을 해 퇴장당했다. 그 해 포항은 FA컵에서 우승했다. 김기동은 "그 때 내 퇴장으로 졌으면 큰 상처가 됐을 것이다"고 회상했다.

㉬포항 : 포항은 고난의 땅이었다. 1991년 고교 졸업 후 연습생으로 입단했지만 2년간 경기에 뛰지 못했다. 2003년, 떠난지 10년만에 친정으로 돌아왔다. 결국 4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김기동은 우승 한번더를 외치고 있다. 올 시즌 K-리그 우승이다.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후배 : 가장 좋아하는 후배를 꼽으라면 이동국이다. 함께 뛴 시간은 길지 않다. 2005년과 2006년 2시즌 밖에 없다. 그러나 환상의 콤비였다. 김기동의 패스 끝에는 이동국이 있었다. 김기동은 2005년 5개, 2006년 7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동생이 없는 김기동에게 이동국은 친동생이나 다름없다. 이동국에게 지면을 빌어 한마디 하라고 했다. 김기동은 멋쩍어하더니 "나만큼 오래 K-리그에서 뛰어라"고 했다. 그리고는 흐뭇한 웃음으로 마무리지었다. 포항=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