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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드래프트 스케치] 세 번의 수술 이기고 롯데 1지명 된 김원중과 그 아들을 지켜낸 아버지



"동산고 투수 김.원.중!"

아들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아버지는 소리없이 환호했다. 공식석상이라 큰 소리는 낼 수 없었다. 그러나 불끈 쥔 두 주먹과 환하게 피어난 얼굴에는 끝내 외치지 못한 우렁찬 함성이 생생히 담겨있다. 선수 생명이 걸린 세 번의 수술을 훌륭히 이겨내고 어엿한 프로선수가 된 아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하기만 했다. 이내 아버지의 눈가는 촉촉하게 물들었다.

같은 순간, 아들은 저도 모르게 혀를 살짝 내밀었다. 양 옆에 앉아있던 또래 친구들이 축하의 박수를 쳐줬지만,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정말 내 이름이 불린거야? 그것도 1라운드에?'. 믿기지 않을만큼 기뻤지만, 마음껏 웃지 못했다. 슬쩍 행사장 뒤쪽에 앉아 소리없는 함성을 내지르는 아버지를 쳐다본 아들은 조용히 다짐했다. '이제는 절대 아프지 말아야겠다.'

25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2 프로야구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5순위로 롯데에 지명된 김원중(18)과 그 자리에 참석한 부친 김용빈(45)씨가 함께 이겨낸 고통의 시간은 그렇게 보상받고 있었다.

▶아들아, 아빠가 낫게 해줄게.

광주 학강초등학교 2학년, 꼬마아이 김원중의 '영웅'은 일본에서 친정팀 KIA로 돌아온 이종범이었다. 이종범을 보러 무등야구장을 들락거렸고, 이종범을 흉내내며 동네야구를 했다. 그렇게 야구의 매력에 흠뻑 취한 소년은 부모님을 설득해 곧 야구부 유니폼을 입는다.

처음에는 이종범처럼 유격수로 출발했다. 좋아서 시작한 운동이니 열심히 안 할수 없었다. 그런데 막 기본기를 쌓으려던 중학교 1학년 때, 몸에 이상이 생겼다. 연습도중 슬라이딩을 하다가 오른쪽 골반에 통증이 찾아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밀검진 결과 '대퇴골두 골단 분리증' 판정이 나왔다. 쉽게 설명하면, 골반뼈에 끼워져 있는 허벅지뼈가 빠지는 증세다.

광주에서 찾아간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해야 한다면서 "운동은 앞으로 못한다. 정상생활이 불편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종범같은 대선수를 꿈꾸던 김원중에게는 세상이 끝났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그때 부친 김용빈씨가 나섰다. 수술 당일, "여기서 수술 안받겠다"며 아들의 손을 끌고 병원을 나왔다. '더 큰 병원에 가면 다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확신만 가진 채 서울행 기차에 올라탔다. 아들의 꿈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그냥 두고볼 수 없던 것이다.

"원중이가 그토록 야구선수가 되겠다고 했는데…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는데 실의에 빠진 모습을 보니 가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식의 꿈을 지켜주고 싶은 것은 모든 아버지의 본능이다. 그렇게 부자는 낯선 서울에서 무작적 대학병원 응급실로 직행했다. 무모한 시도였다. 그러나 아들의 꿈을 지켜주기 위한 아버지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운이 정말 좋았습니다. 서울대병원에서는 수술 잘 받으면 야구를 계속할 수도 있다더군요". 김용빈씨는 '운'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운'이 아니라 지극정성의 결과였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는 아프지 않겠어요.

2006년 서울대병원에서 오른쪽 대퇴골두와 골반뼈에 나사못을 박은 김원중은 이듬해 같은 증세가 우려되는 왼쪽 다리에도 같은 수술을 받았다. 2008년에는 양 쪽의 나사못을 완전히 빼는 수술을 받아 총 세 차례 수술대에 누웠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어긋났던 뼈는 제자리를 잡았고, 김원중의 키와 야구실력도 쑥쑥 자랐다.

그 동안 김원중과 부친 김용빈 씨 그리고 모친 배미화(42)가 겪은 인고의 시간은 말할 수 없이 길었다. 덤프 트럭을 모는 김용빈 씨는 개인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아들이 수술을 받으러 서울에 올라올 때 늘 함께였다. 수술 이후 병상에 누워있을 때는 배미화 씨가 아들을 수발했다.

김용빈 씨는 "애기 엄마가 정말로 고생 많이 했습니다. 몸을 못 움직이니까 음식 먹여주는 것부터 대소변 처리까지 손발 역할을 다 해야 했지요. 원중이가 다시 야구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엄마 덕분입니다"라며 공을 아내에게 돌렸다. 그러나 그 공을 어찌 평가할 수 있으랴.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의 정성이 없었다면 지금의 김원중은 있을 수 없었다.

김원중 역시 이 점을 뼈에 새겼다. "몸이 안 좋았을 때 부모님이 잘 보살펴 주셨기 때문에 오늘 예상외로 높은 순위에 지명받을 수 있었어요. 프로에서는 아프지 말고, 좋은 성적 내서 보답해야죠". 크고 선한 눈망울에는 부모님에 대한 깊은 감사가 담겨있었다.

김용빈 씨는 말한다. "이제껏 아들하고 좋은 일로 서울에 같이 온 적이 없습니다. 늘 수술 받으러 왔을 뿐이죠. 그런데 오늘만큼은 다르네요. 최고로 기쁜 날입니다". 김원중도 말했다.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정말 훌륭한 선수가 돼서 부모님을 더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 훌쩍 커버린 아들은 어느새 키가 자신의 어깨 높이로 낮아진 아버지를 위해 무릎을 굽혔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뺨에 사랑과 격려를 담은 뽀뽀를 선물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