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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기자들도 놀란 30분간의 용퇴 발표

설마 했던 얘기가 김성근 감독의 입에서 현실로 나오자 취재진 모두 할 말을 잃었다.

SK-삼성전이 예정된 17일 오후 인천 문학구장. 취재진은 원정팀 감독실에서 삼성 류중일 감독과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이후 덕아웃으로 나와 훈련을 마치고 속속 들어오는 선수들을 상대로 개별 취재를 했다. 1위팀 삼성의 덕아웃은 요즘 성적이 말해주듯, 분위기가 늘 좋다.

오후 5시15분쯤이었다. 배팅케이지 뒤쪽으로 SK 홍보팀 직원 두명이 부지런히 원정 덕아웃으로 걸어오는 게 눈에 띄었다. 보통 홈팀 관계자들이 원정팀 덕아웃에 들어오는 경우란 잘 없다.

SK 관계자는 10여명의 기자들에게 "감독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지금 가시죠"라고 말했다. 김성근 감독이 경기전 감독실에서 기자들과 환담을 나누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일부러 직원 두명이 찾아와 자리를 마련했다며 감독실로 안내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중대 발표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었다. 최근 김성근 감독과 SK 프런트는 재계약 문제 때문에 서로 껄끄러운 처지에 놓여있었다.

감독실에 들어섰다. 김 감독은 사전을 펼쳐놓고 정독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착석하자 김성근 감독은 곧바로 얘기를 꺼냈다. "뭐라 그래야 할까. 이번 시즌을 끝으로 그만두기로 했어."

순간적으로 취재진이 얼어붙었다. 프로야구에서 지금껏 숱한 감독이 유니폼을 벗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팀의 감독이 시즌후 사퇴를 미리 기자들에게 발표하는 건 유례없는 일이다. 더구나 경기를 하는 날에 말이다. 올시즌 개막후 김경문 전 감독이 두산 사령탑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때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최근 4년간 세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던 감독이 먼저 팀을 떠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이어 조심스럽게 몇가지 질문과 응답이 이어졌다. 김성근 감독은 이미 마음을 굳게 먹은 듯 차분하고 담담하게 질문에 응했다. 말미에는 "내가 이 팀에서 5년 했으면 많이 한 것 아닌가"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또한 "남은 41게임을 열심히 치르려한다. 그게 예의다"라고 말했다.

약 30분간의 대화를 마친 뒤 감독실을 나서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기자들 대부분이 그러했을 것이다. 김성근 감독에 관한 세간의 모든 긍정-부정적인 평가를 떠나, 대체 어떻게 하다 이런 상황까지 흘러오게 됐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다.

인천=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