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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5회?' 선발승, 왜 이토록 어려울까

선발 투수의 승리 기준은 다소 억울하다.

불펜 투수의 경우 공 1개 던지고도 행운의 승리를 얻을 수 있다. 반면, 선발 투수는 100개의 공을 잘 던지고도 승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구원승과 선발승의 규정 차이 때문이다. 구원승과 달리 선발승은 물리적 제한이 있다. 5이닝을 채워야한다. 4⅔이닝을 퍼펙트로 막더라도 아웃카운트 1개를 더 잡지 못하고 내려가면 선발승은 없다.

게다가 동료의 도움도 절실하다. 타선 지원이 없으면 절대 승리할 수 없고, 경기 후반 불펜이 동점을 허용하면 승리는 날아간다. 그야말로 선발승은 조화의 산물인 셈.

그래서 눈물 겨운 '선발승 대기자'가 속출한다.

▶4⅔이닝의 사나이 나이트

넥센 나이트(Knight)는 '기사'란 뜻이지만 소리나는대로 읽으면 '밤(Night)'으로 들리기도 한다. 나이트는 올 여름 깜깜한 밤이 찾아올 무렵이 반갑지 않다. 마의 5회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 지난 6월19일 목동 롯데전 이후 7차례 선발 등판에서 나이트는 무려 5차례 5회에 강판됐다. 그 중 4차례는 5회 2사후 강판이었다. 원치 않는 '4⅔이닝의 사나이'였다.

4일 두산전에서 무려 1484일만에 감격의 선발승을 따낸 김희걸 역시 '마의 5회'를 경험한 끝에 소중한 선발승을 따냈다. 지난 4월13일 넥센과의 올시즌 첫 선발 등판에서 꼬였다. 5이닝 3안타 무실점 호투에도 불구, 승리를 챙기지 못했던 것. 이후 두 차례나 잘 던지고도 5회에 마운드를 내려오며 아쉬움을 삭혀야 했다.

넥센으로 트레이드 된 이후까지 연패를 끊지 못하고 있는 심수창은 선발승의 어려움을 시연해 보이고 있는 장본인이다.

▶선발승, 완벽한 조화 속에 탄생하는 옥동자

구원승은 우연의 산물일 경우가 많다. 불펜 투수가 자신의 승리를 의도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앞 선 상황 등판에서의 승리는 블론세이브를 동반하는 경우이니 오히려 고개를 떨굴 일이다. 동점 상황에 등판한다고 해도 경기 상황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하지만 선발 투수는 다르다. 애당초 자신의 승리를 위해 던진다. 승리 요건인 5이닝은 기본. 불펜의 블론세이브 확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자신이 긴 이닝을 소화해야 한다. 이 때문에 '스테미너 조절'이 필요하다. 쓸 수 있는 최대 에너지를 예측해 분산시키는 작업이다. 의도대로 되면 좋으련만 쉽지 않다. 살살 던지다 위기를 맞으면 전력투구를 해서 탈출하기. 특급 에이스에게나 가능한 꿈같은 해법일 뿐, 반대 상황이 오히려 더 많다. 위기 때 힘이 들어가 편안할 때의 공을 던지지 못하는 투수가 더 많다.

자기 자신과의 심리 싸움은 가장 큰 극복 과제다. 많은 선발 투수들은 나이트 처럼 잘 던지다가도 5회만 되면 볼넷을 내주며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는 경우가 많다. 부지불식 간에 찾아온 과도한 승리 의욕 탓이다. 잘 던지고 있다가 타선이 점수를 뽑아 리드만 잡으면 곧바로 '털어먹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또한 같은 심리적 요인이 밸런스에 영향을 미친 케이스다.

자신과의 싸움을 모두 극복해내더라도 타선과 불펜 지원이 없으면 헛수고가 된다. 선발 첫 승이나 오랜만의 선발승 직후 피자 등 동료들에게 먹거리를 돌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