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명 임종 지킨 日호스피스 의사 "집에서 죽는 문화 만들자"

2023-10-03 08:09:14

[촬영 이세원]


"무리한 연명이 고통 늘린다"…수명 연장보다 하루하루 만족감 중시
욕창 시달리는 무의식 위루관 환자 보며 "이게 뭔가" 의문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집에서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려고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죽을 때도 지켜봐 주는 그런 의사가 있으면 좋겠어요."
말기 암 환자 등 약 3천명의 생애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히라노 구니요시(平野?美) 일본 홈온클리닉쓰쿠바 원장은 호스피스 의사로 활동하며 자신이 목표로 하는 바를 3일 연합뉴스와의 전화·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방문 진료 특화 의사로서 히라노 원장이 주로 상대하는 환자는 자택에서 요양 중인 고령자, 말기 암 환자, 난치병으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 등 죽음을 앞둔 이들이 많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그는 최근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저서 '후회 없이 내 마음대로'(비아북)에서 "불필요한 연명 조치는 결코 환자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무리한 연명치료에 반대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히라노 원장은 "인생의 마지막을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죽음으로써 그 사람의 생명이 더 빛난다"며 자신이 임종을 지켜본 이들을 진짜 행복을 깨닫게 해 준 스승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죽음, 특히 노쇠로 인한 죽음이 원래는 당사자에게 그렇게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은 아니지만 "자연적으로 죽게 돼 있는 것을 무리하게 연명하는 것이 역으로 의학적·사회적 고통을 늘리고 있는 것 같다"고 최근 세태에 우려를 표명했다.


히라노 원장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사람은 의식이 혼탁해지고 마지막에는 하악 호흡을 시작한다. 산소 흡입량이 줄어드니 턱과 목의 근육을 움직여서 어떻게든 산소를 받아들이려고 하면서 나타나는 움직임이다.

하악호흡을 하는 이는 괴롭거나 헐떡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딱히 괴로움을 느끼는 단계는 아니라고 히라노 원장은 설명한다. 산소 흡입량이 줄어들고 이산화탄소가 축적되면서 뇌 내 마약 물질인 엔도르핀이 분비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령 환자가 식사하지 못하고 쇠약해지면 가족이 많은 걱정을 하지만 기아 상태에 빠지면 몸속에서 중성 지방을 연소·분해해 에너지 물질을 보충하려고 하는 동안 그 일부가 케톤체라는 물질로 변화하고 이로 인해 강한 행복감을 느낀다고 히라노 원장은 설명했다.

이산화탄소 나르코시스(혼수상태), 엔도르핀, 케톤체의 작용으로 죽음이 그리 고통스럽지 않다는 이론에 관해 히라노 원장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특히 노쇠의 경우는 이 3가지에 문제가 없으며, 전혀 초자연적이거나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히라노 원장은 그렇지만 극단적인 방식을 옹호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숨쉬기 힘들 때는 산소 흡입을 하고, 고통이 격렬하면 통증을 제거하자. 나머지는 자연에 맡기자"며 자신이 지향하는 죽음은 '안락사'가 아니라 '자연사'라고 덧붙였다.


히라노 원장은 다량의 약물을 긴 시간 동안 한 방울씩 떨어뜨려서 정맥으로 주입하는 점적(點滴)주사나 먹지 못하는 환자의 배에 구멍을 뚫고 위에 음식을 공급하도록 하는 위루(胃瘻)관을 시술하는 것이 오히려 고통을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메커니즘을 지니게 마련인데 점적주사나 위루로 이것을 망쳐버려 역으로 고통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여기저기서 하고 있지만 반론 당한 적은 없고 오히려 저와 같은 이야기를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의사 초년 시절 병원에서 당직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히라노 원장은 위루관 시술을 한 환자들을 회고했다.

"왼쪽에 100명, 오른쪽에 100명, 위에 구멍이 뚫린 채 의식도 없는 상태로 아침에는 동쪽, 저녁에는 서쪽을 향해 있는 환자들을 보며 '이게 뭔가' 생각했어요. 그런 상태로 가족이 몇 년째 면회도 안 오고 몸이 약해져 욕창이 일어나고 있지만 스스로 죽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대로 가는 것이 지옥이라고 생각했어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의문을 느끼게 하는 지나친 의료 행위가 벌어지는 이유 중 하나로 관점의 차이를 꼽았다.

그는 "하는 일에 따라서 생각이 달라진다. 구급 의사는 1시간이라도, 혹은 1초라도 길게 살리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소아과 의사라면 (어린이의 목숨을) 포기하기는 좀처럼 어려운 일"이라며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의사는 역으로 사람의 목숨을 쉽게 포기한다는 비판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히라노 원장은 건강과 수명에 대한 강박 때문에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상황, 때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당하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그는 "지금 일본은 건강이라는 말이나 장수에 너무 매달리고 있다"면서 "병원이나 시설에 있으면 안전할지는 모르지만 죽음을 두려워해서 그곳(병원)의 흰 벽을 보는 생활에 얼마나 가치가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히라노 원장은 "내가 돌보는 환자의 다수는 장수가 더 필요 없다. 오래 살아도 즐겁지 않다. 가능하면 오래 지내서 정든 집에서, 너무 괴롭지 않은 방법을 택하고 싶다고 말하는 분이 많다"면서 목숨을 연장하는 것보다 하루하루가 주는 만족감의 중요성을 인식하라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 그는 가능한 한 집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을 권장한다.

1950년대 초에는 일본의 사망자 가운데 집에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80%를 넘었지만 1977년을 기점으로 병원에서 사망하는 이들이 집에서 세상을 떠나는 이들보다 많아졌다. 현재는 80% 이상이 병원에서 임종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히라노 원장은 "최근 수십년간 (다수가) 병원 밀실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일본인이 죽음이나 노쇠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집에서는 환자도 가족도 자유롭다"고 인생의 최후를 집에서 맞이하는 장점을 강조했다. 말기 환자들의 삶의 질을 중시하는 히라노 원장은 당사자가 원하면 흡연, 음주, 여행도 하도록 하고 있다.

그의 저서를 보면 히라노 원장이 의사로서 가지는 남다른 가치관은 바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보면서 형성됐음을 알 수 있다.

"내 환자들은 허세 따위 부리는 일 없이 맨얼굴로 나에게 '사는 방법'을 자연스레 보여준다. (중략)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정직하게 때로는 적나라하게 나에게 말해 준다. 그리고 들려오는 말의 구석구석에 공통된 말이 있다. 그것은 '후회는 없다'라는 말이다."

히라노 원장은 1964년 일본 이바라키(茨城)현 류가사키(龍ケ崎)시에서 출생했으며 쓰쿠바(筑波)대 의학전문학군을 졸업한 후 쓰쿠바대 부속병원 및 이바라키현 내 핵심 의료기관인 '중핵(中核)병원' 등에서 의료 업무에 종사했다.

2002년 쓰쿠바대 의학전문학군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방문 진료 전문 클리닉인 홈클리닉쓰쿠바를 개원했으며 다음 해에 의료법인사단인 사리레이카이(彩黎?)를 설립했다. 일본의 의료 규제에 따라 클리닉에서 16㎞ 이내에 있는 환자를 찾아가 돌보고 있다. 최근까지 2천900여명의 임종을 지켰다.

sewonlee@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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